한국일보

‘악명 높은’ RBG

2018-10-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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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G로 불리는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는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현재 85세의 최고령 대법관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임명돼 1993년부터 25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록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노터리어스 RBG’라는 이름의 팬 블로그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그녀의 캐릭터는 ‘팝 컬처 아이콘’이 되어 티셔츠, 컵, 네일아트, 할로윈 코스튬, 인형, 컬러링북 등으로 상품화됐고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2015년에 출판된 평전(‘Notorious RBG: The Life and Times of Ruth Bader Ginsburg’)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난 5월에는 ‘RBG’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와 호평 받았으며, 다음 달 11월에는 펠리시티 존스 주연으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On The Basis of Sex’)가 개봉될 예정이다. 또 남가주에 있는 스커볼 문화센터는 오는 19일부터 내년 3월까지 긴스버그의 대법관 임명 25주년을 맞아 특별전시회를 연다.


작고 마르고 성깔 있게 생긴 ‘할머니 대법관’이 이처럼 많은 젊은이와 미국인들의 우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야 말할 것도 없이 남성 중심의 대법원에서 소신있고 용감하며 맹렬한 진보적 판결로 여성과 소수계의 인권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군사학교에 남성의 입학만 허용한 버지니아 주에 대해 양성평등권 침해 판결, 국가가 장애인을 과도하게 시설에 격리하는 데 대한 차별 지적, 동성결혼 합법화 강력 지지, 동성 부부가 이성 부부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연방결혼보호법 폐지 찬성, 에이즈 퇴치 운동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성매매 반대를 명시하도록 강요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결정에 찬성, 2014년 어퍼머티브 액션 금지에 반대한 것 등등 수두룩하다.

RBG는 1999년 대장암 수술을,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모두 극복한 후 운동으로 건강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트레이너와 함께 훈련하면서 무릎을 바닥에 대지 않고 팔굽혀펴기 20회를 할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가 이렇게 몸 관리를 하는 것은 트럼프 때문이라는 ‘썰’이 있다. 자신이 은퇴하면 그 자리에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대법관을 임명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현직에 있는 동안은 자신도 건강하게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8월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던 RBG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워낙 고령인지라 그의 은퇴를 두고 많은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긴스버그는 “선배 대법관 존 폴 스티븐스가 90세에 은퇴했으니 나도 5년 정도 더 일할 생각”이라고 공표한 것이다.

긴스버그는 2016년 트럼프가 대선 후보이던 시절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사기꾼’이라면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트럼프가 지명한 브렛 캐버노 대법관 지명자의 성폭행 미수 혐의에 대한 FBI의 조사가 종결되는 대로 상원의 인준 표결이 곧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그의 대학시절 과도한 음주 문제와 공격적 성향이 계속 폭로되고 있다. 이런 사람이 종신직인 대법관이 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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