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의 관광 갑질

2018-10-02 (화)
작게 크게
1억2,900만. 1억3,100만. …2억2,000만. 무슨 숫자인가. 해외 유커(遊客)로 불리는 중국인 해외 관광객 숫자다.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멀리 유럽 등을 방문한 해외 유커는 2017년 1억2,900여 만으로 집계돼 기록을 세웠다. 올해는 그 수치가 1억3,100만여 만에 이르고 오는 2025년에는 최소한 2억2,000만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에도 해외관광은 한동안 평범한 중국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던 것이 꾸준한 경제성장과 함께 1995년부터 외국으로 가는 문이 열리면서 전 세계는 마침내 ‘유커 쓰나미’ 현상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10월 1일부터 7일간 이어지는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700여만 명의 중국인들이 해외 나들이에 나설 것으로 추산되면서 또 한 차례의 유커 홍수사태가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경고의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베이징은 해외관광객을 경제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중국의 기이한 무기-관광객’- 싱크 탱크 스트랫포가 지난 7월 9일 펴낸 보고서 제목이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자국 관광객에 대한 규제와 통제가 베이징의 중요한 국정운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포린 폴리시지도 같은 지적을 했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자 베이징은 그 보복으로 유커 카드를 휘둘러 댔다. 결과는 베이징 입장에서는 아주 만족할 수준.

그러니까 ‘샤프 파워’(sharp power- 막대한 시장과 경제력을 무기로 기업이나 다른 나라를 위협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종의 강제력)행사에 아주 유용한 방안임이 입증된 것. 이후 베이징은 툭하면 그 무기를 들이대고 있다.

중국에 취항 중인 항공사들에 별도 국가로 표시해온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로 바꿔 표기할 것을 요구한 것도 그 일환이다. 남태평양의 아주 작은 나라 팔라우도 타이완과 수교국이라는 괘씸죄에 걸려 관광산업이 초토화 됐다. 베이징이 단체여행을 금지한 것.

내일은 일본이 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가 또 필리핀이 될 수도 있다. 뭐랄까. 신종의 인해전술이라고 할까. 베이징의 그 무지막지한 전술의 희생자가.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중국 유커의 무기화 -이는 중국이 전체주의 사회주의국가이기에 가능하다.” 포린 폴리시지의 진단이다.


해외여행을 전담하는 중국의 5대 여행사 중 3개 사는 사실상 공산당이 경영하는 국영기업체다. 나머지 여행사도 정부의 눈에 벗어나면 지탱할 수 없다. 그러니 베이징은 마음에 드는 나라만 골라 유커를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여행의 자유마저 통제를 받고 있는 게 중국의 현주소라는 얘기다.

관광객을 무기로 한 중국의 갑질- 이는 미국에도 통할까. 날로 확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서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