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벌 수난시대(?)

2018-09-25 (화) 12:00:00
크게 작게
“속담에 천금의 아들은 저자에서 죽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빈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은 모두 화락하여 이(利)를 위해 모이고 얽히고설켜 모두 이(利)를 위해 떠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화식(貨殖)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Money talks’라고 하나. 부(富)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래서 그 중요성을 따로 한 항목으로 다룬 것이 화식열전이다.

사마천은 B.C.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대에 산 고대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부를 일군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높이 샀다.


무위무관(無位無冠)이다. 그런 몸으로 정치를 해치지도 않고 백성을 방해하지도 않으면서 보통사람의 천 배, 만 배의 부를 모은 그들에게 지자(智者)들도 갈채를 보낸다고 기록한 것.

이 같이 엄청난 부를 모은 사람들을 그는 소봉(素封)이라고 불렀다. 관으로부터 봉록도 받지 않는다. 영지에서 조세를 거두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후와 같은 부와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소봉들에 대한 예우는 제후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사기의 기록이다. 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소봉을 만날 때면 몸소 나아가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Money talks’는 고래로부터 불변의 진리였던 셈.

자본주의 시대다. 이 시대의 소봉, 다시 말해 대기업 CEO나, 재벌총수는 해외에 나가면 때로 사실상의 국가원수 급 대우도 받는다. 특히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경제를 일으키려는 나라를 방문할 때면 더 그렇다.

인도의 간디 총리와 삼성 이재용의 단독 만남이 그런 케이스다. 인도의 권력 1인자가 삼성이 투자해준데 대한 고마움을 이런 예우로 보답한 것. 베트남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서열 1위인 공산당 서기장이 베트남을 방문한 이재용을 직접 만나 삼성의 투자를 요청했다.

그 이재용을 비롯해 SK그룹의 최태원, LG그룹의 구광모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김용환 부회장 등 4대 재벌 그룹 총수 급 인사들이 ‘떼 지어’ 평양을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 것이다.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들이 ‘떼 지어’ 평양을 가게 된 사연은 북한의 강력한 요청 때문인 것은 다 알려진 사실. 그러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정작 더 황당한 것은 북한 당국자들과 만나는 광경이 아니었을까.

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의 하나다. 그런 한심한 북한의 경제의 실무자이다. 게다가 북한 내 권력서열도 한참 처진다. 그런 이용남에게 알현이나 하는 듯이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이 떼를 지어 면담을 했다. 그로 그친 게 아니다. 마치 자신이 한국 대기업 총수들을 소집이나 한 것 같은 자세에 훈수조의 말투로 일관한 것이다. 그 모양새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기뻐하기 보다는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무조건 퍼주기의 시작이 아닌가 하는 의심만 키우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재벌총수들의 떼거리 평양방문 - 이는 아무래도 자충수성의 악수 중 악수로 보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