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확행

2018-09-21 (금)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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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최고의 유행어는 ‘소확행’ (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의 카톡을 통해 처음 듣고는 ‘이게 무슨 우주여행 언어인가?’ 하였더니 나만 몰랐지, 사람들은 벌써부터 자신의 ‘소확행’에 관한 사진과 글을 SNS를 통해 알리고 있었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

위의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중에 나온 글이다. 원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글보다는 뉴욕이나 그리스의 외딴 섬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상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그가 ‘소확행’을 한국인들에게 유행시켰다.


요즘 젊은이들은 수년 전부터 남들이 뭐라든지 신경 쓰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에 살면서 나름의 행복을 찾고 있다. 고양이 키우기, 고택 사진전, 북클럽, 레고나 건담 및 드라마 캐릭터 컬렉션, 이탈리아 요리나 바느질 취미 등을 공유하는 모임이 많다. 이들은 돈을 많이 번다거나 출세에는 관심이 없다. 흙수저나 동수저 출신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1%에 들어가기 불가능하니 아예 내 형편에 맞게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우선으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다.

‘소확행’의 유행과 함께 가수 김연자(60)가 부르는 가요 ‘아모르 파티’(이건우, 신철 작사, 윤일상 작곡)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 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

EDM 댄스음악과 트로트를 섞어서 신나게 ‘아모르 파티’를 외치는데 남녀노소, 특히 20대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다. 2013년 7월에 발표된 곡인데 작년부터 이벤트, 대학축제, 효도잔치, 디너쇼까지 ‘아모르 파~티’다. 아모르 파티의 아모르(Amor)는 사랑, 파티(Fati)는 운명을 뜻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에서 나온 말이다. ‘소확행’ 과 ‘아모르 파티’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의 ‘소확행’은 ‘밥은 한 끼 굶어도 좋은 구경만은 꼭 하자‘이다. 그래서 10월6일 메츠 홈구장 씨티필드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 공연을 꼭 가고 싶었다. 딸에게 티켓 구입을 시켰는데 8월17일 오후 4시에 시작된 4만석의 티켓 발매는 40여분 만에 사이트에 접근도 못한 채 끝나버렸다. 티켓 중고사이트는 서너 배 오른 가격으로, 암표 대란도 일어나니 이 정도면 ‘소확행’ 이 아니라 ‘대확행’(대단하고 확실한 행복)이다.

아쉬웠지만 딸은 전설적인 포크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폴 사이먼(77)의 공연 티켓을 구입해 주었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고 놀던 공원, 가수 활동초기를 보낸 퀸즈 메도우 코로나 팍 극장에서 반세기 팬들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고별공연이다. 방탄 소년단 공연티켓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다. 과거의 빌보드 1위와 현재의 빌보드 1위의 차이다.

‘침묵의 소리’,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스카보로 페어’, 영화 ‘졸업’에 나와 히트를 친 ‘미세스 로빈슨’까지 70년대에 DJ 나오는 다방에서 수없이 듣던 원조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내게는 어떤 생일선물보다도 기쁜 ‘소확행’ 이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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