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격의 연속’ 평양정상회담

2018-09-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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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된 남북정상의 역사적 만남은 한마디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도착 순간부터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이어진 파격은 정상회담을 취재한 언론들은 물론 TV로 두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시청자들까지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김정은 부부의 공항영접과 북한 의장대의 분열 및 사열, 그리고 두 정상의 카퍼레이드는 이전 두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와는 다른 파격적 의전이었다. 평양방문 둘째 날인 19일 밤 평양 능라도의 ‘5.1 경기장’에서 펼쳐진 대집단 체조예술 관람 후 문 대통령이 15만 군중 앞에서 7분간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도 역사적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묘사되는 깍듯한 의전이 김정은이 보여준 파격이었다면 평양시민들과의 거리낌 없는 스킨십은 문 대통령이 보여준 파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순안공항에 나온 환영인파에 먼저 다가가 환한 표정으로 악수를 나눴다.


둘째 날 북한주민들이 많이 찾는 대동강 수산물 식당에서 만찬을 가진 것도 문 대통령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해외순방 때마다 그 나라 서민들이 많이 찾는 식당을 방문하고 일반 국민들과 대화하기를 즐긴다. 수산물 식당에서도 식사 중이던 평양주민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특히 문 대통령이 공항 환영인파와 예술공연 관객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폴더인사를 하는 모습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북한에서 국가지도자는 모든 인민들 위에 존재하는 절대적 존재이다. 허리를 숙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허리를 숙였으니 북한 주민들에게는 놀라움과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광경이었다. 한 역사학자는 트위터에 “문 대통령이 평양시민들에게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북한주민들 의식을 바꾸는 데 전단 100억장보다 더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사람을 서로 잇는 것은 돈이 아니라 겸손한 태도와 따뜻한 마음”이라고 썼다.

또 하나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김정은의 서울방문 초청 수락이다. 그의 서울방문은 많은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는 모험이다. 그래서 측근들은 서울방문을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정말로 초청을 받아들일 것이라 예상한 남측 인사들 역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김정은은 이를 수락했다. 자신감의 표출이자 서울방문을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 판단한 듯하다.

연이은 파격의 화룡점정은 김정은의 깜짝 제안으로 이뤄진 남북정상의 백두산 등정이었다. 평소 북한 땅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해 온 문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의 배려였지만 두 정상이 함께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오른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상징성을 지닌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파격’은 말 그대로 격식을 깨는 것을 뜻한다. 형식과 오랜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도의 외교행위인 정상회담에서 파격이 이어진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친밀감과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보여준 파격은 향후 남북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징후로 봐도 무방하다. 아무쪼록 두 정상 간의 격의 없는 모습이 파격적 이벤트, 파격적 퍼포먼스를 넘어 파격적 성과로까지 이어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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