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판사 전쟁

2018-09-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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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제정된 연방 헌법은 중앙 정부에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는 이유로 반연방주의자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았으며 발효 여부가 불투명했다. 13개 주중 ¾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헌법 인준을 위해 연방주의자들은 왜 새 헌법이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에세이를 신문에 싣기 시작했다. 이렇게 실린 85편의 에세이를 한 권의 책으로 모은 것이 바로 헌법에 관한 가장 뛰어난 해설서로 불리는 ‘연방주의자 논고’(The Federalist Papers)다.

이 에세이를 쓴 사람은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3명인데 이중 해밀턴이 쓴 것이 51편으로 가장 많다. 해밀턴이 쓴 에세이 중 특히 주목을 받은 것 중 하나가 78번으로 사법부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해밀턴은 연방 정부를 이루고 있는 입법, 행정, 사법 3부 중 “칼도 지갑도 없는” 사법부야말로 “가장 약한 부”라며 사법부가 입법, 행정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과오가 없는 한 판사의 임기를 종신으로 하고 의회가 만든 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위헌 심판권을 법원에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부의 위헌 심판권은 헌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대법원 판례로 굳어져 이제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 대법원의 권한이 됐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이 위헌 심판권을 거머쥐면서 사법부는 어떤 의미로는 가장 강력한 부가 됐다. 국민이 뽑은 의회가 통과시키고 역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서명한 법도 대법원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무효화시키면 휴지가 된다. 연방 대법원은 그밖에도 미국 사회에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슈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 거기다 연방 대법관은 한번 임명되면 스스로 그만 두기 전까지는 평생 간다. 공화 민주 양당이 자기 마음에 드는 대법관 지명에 사활을 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법관 인준에 필리버스터가 인정돼 다수당이라도 60석이 필요할 때는 소수당과 어느 정도 타협이 가능했다. 그러나 공화당이 이를 없애버리면서 판사 인준을 둘러싼 싸움은 더 치열해졌다.

지난 주까지도 기정 사실인 것처럼 보이던 브렛 캐버노 연방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이 불투명해졌다. 36년 전 캐버노가 17살이던 시절 술을 먹고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한 여성의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도 불구 인준을 강행하려던 공화당의 전략은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일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공화당은 다음 주 이 여성과 캐버노를 의회로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워낙 오래 된 일이고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두 사람 말만 듣고 사실을 판단해야 하는 데 쉬운 일은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아무 증거도 없이 여성 말만 믿고 자질이 검증된 대법관 후보를 탈락시키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중간선거를 코 앞에 두고 이런 악재가 터진 것에 공화당은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연방상원은 51대 49라는 초박빙 구도라 공화당 의원 중 두 명만 이탈자가 나와도 인준이 어려운데다 가까스로 인준이 된다 하더라도 성추행 혐의가 있는 인물을 대법관으로 앉힌데 분노한 여성들이 투표장으로 몰려나올 경우 어려운 선거판이 더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공화당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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