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계 노예

2018-09-15 (토) 박찬효 약물학 박사
작게 크게
C. V. 게오르규가 1949년에 출간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작품 ‘25시’는 지금 현대사회의 모습을 놀랍도록 정확히 예견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는 그 책에서 “노예제도의 폐지는 인류 문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인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다시 노예 매매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한다.

말할 수 없이 빠르게 발전한 기계문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 개개인의 독특성을 빼앗고, 하나의 전체주의, 획일주의로 몰고 가서 인간이 만들고 시키는 대로 작동하는 ‘기계 노예’에 인간이 오히려 노예화 되어가는 현대문명의 모습을 정확히 예고했다고 볼 수 있다.

게오르규에 의하면 인간의 존엄성은 그 사회적 가치에 달려있고, 서구 문명의 세가지 대표적 가치는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아 미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 로마 문명의 근간인 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길러낸 전통인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문명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가치관들이 흐려지고, 개인의 유일성과 특성은 전체에 가리어져 하나의 통계숫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예를 빌리면, 한 인간은 방직기계라는 거대한 조직에 끼어 있는 한 올의 실과 같아서, 그 실이 다른 실과 함께 짜여져서 혼자서는 독립성, 자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개인보다 속해있는 집단에 따라 선과 악, 죄와 무죄로 분류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던 스마트폰, 인공지능 로봇, 인터넷 및 각종 소셜 미디어 등은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되어가고, 그 해악을 판단할 틈도 없이 기계문명의 노예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15세 이하의 학생이 학교에서 셀폰을 지참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논란이 뜨겁다. 이것이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배우고, 자기 성장을 위해 학교에 가는데 왜 셀폰이 필요할까? 부모들이 자녀들을 모니터 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그것은 일반 전화기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빗 브룩스는 무서운 실상을 폭로했다. 전자기술 회사들은 마치 담배산업처럼 청소년들에게 외로움을 해소해 준다는 등의 유혹으로 고의적으로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소셜 미디어가 이들을 더욱 고립시켜 친구 간의 접촉을 막고, 속해 있는 사회의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로 몰아넣어 그들을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크리스틴 엠바는 ‘인터넷은 해악(evil)인가? 우리가 결정 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대인은 기술문명의 결과로 쏟아져 나오는 정보, 지식을 건전한 분석, 판단 없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김 모씨가 대통령 선거 시 댓글조작을 위해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라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킹크랩”이라는 자체 서버를 개발하여 대선 결과를 좌우할 만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기계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기계문명의 덕과 해악을 냉철히 판단하여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박찬효 약물학 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