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림스(Lim’s) 농원

2018-09-14 (금) 데보라 임 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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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스(Lim’s) 농원

데보라 임 재정설계사

어릴 적 나는 채소나 ‘벼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지, 과일은 어떻게 달려 있는지 직접 본 적이 없어 늘 궁금했었다. 초등학교 갓 졸업 후 친구들과 담임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무 밭에 하얀색이 아닌 시퍼런 무가 땅에 박혀 있는 것이 하도 신기해 결국은 하나를 호기심에 뽑고야 말았다. 그때 모범생이라고 나를 변호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주인에게서 겨우 벌을 면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농장을 소유한 적이 있었다. 농장에서 가장 크게 자란 수박을 품에 끌어안고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왔던 기억은 지금도 흥분되는 추억이다.

첫 집을 구입할 즈음 앞마당 뒷마당에 심어진 과일나무에 넋이 빠져 눈을 떼지 못했다. “집안 구조를 보셔야지 나무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결국 오렌지, 아보카도, 키위, 사과나무가 멋진 집으로 결정하게 되었고, 나는 별로 크지 않은 구석구석의 땅에 아이의 교육을 핑계로 내 소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근, 감자, 마늘, 비트, 시금치 등 각종 채소를 키우며 틈만 나면 마당에서 살았다. 점심 때가 되면 갓 올라온 풋풋한 상추, 쑥갓, 미나리를 뽑아 큰 양푼에 고추장, 참기름, 밥이랑 썩썩 비벼 남편을 부른다. “임 농부, 땅 파주시느라 수고했수! 새참 드셔요!”

농부의 수고와 감사함을 배우며 25년이 흘러 딸도 장성했고, 몇 번의 이사도 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텃밭을 사랑한다. 변화가 있다면,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땅 사랑이 사람을 사랑하는 법과 정직함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목회하던 시절에는 채소마다 교인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돌보면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했다. 마음이 아플 때에는 그분의 채소와 마주하며 직접 말할 수 없었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부부는 오늘도 싱싱한 야채와 밥을 한 양푼 비벼 들고 마당으로 점심 소풍을 나갔다. 아! 어느 진수성찬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네에 앉아 아기 나무에서 딱 한 개 열린 세상에서 가장 귀한 체리를 후식으로 남편과 반씩 조심스럽게 베어 물며 나는 그 달콤함에 답장을 보낸다. “림스 농원에 와주어 고마워! 쑥쑥 자라 내년에는 더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오렴. 사랑해!”

<데보라 임 재정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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