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력과 언론

2018-09-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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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나온 ‘포스트’는 한 때 워싱턴의 지역신문에 불과하던 워싱턴 포스트가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주요 신문의 하나로 크게 됐는지를 그린 영화다. 메릴 스트립이 아버지와 남편이 사망하면서 그 뒤를 이어 포스트의 경영을 책임지게 되는 캐더린 그레이엄으로, 탐 행크스가 전설적인 편집장 벤 브래들리로 나온 이 작품은 ‘전국 비평 위원회’로부터 올해 최고 영화로, 타임지로부터 올 10대 영화의 하나로 뽑혔다.

그레이엄이 사주가 얼마 안 된 1971년 포스트는 중대한 고비를 맞는다. 뉴욕타임스가 30년간 미국 정부가 베트남과 관련, 어떻게 미국민들을 속였는지를 파헤친 ‘국방부 문건’ 보도를 터뜨리자 당시 닉슨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더 이상 관련 기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가처분 명령을 신청해 법원으로부터 받아 낸다.

이 때 포스트는 타임스의 소스를 추적해 같은 문서를 얻어낸다. 브래들리 편집장은 이를 보도하려 하지만 회사 변호사는 극구 반대한다. 타임스가 발행 중지 명령을 받은 기사를 같은 소스를 이용해 보도한다면 법정 모독죄로 처벌될 수 있으며 마침 포스트의 재정적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추진 중인 주식 상장도 물 건너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그레이엄은 결국 보도를 허락하고 이 사건은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가 6대 3으로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언론의 자유가 국가안보에 우선한다는 판결을 받는다.

‘국방부 문서’에 이어 워싱턴 포스트의 명성을 확고하게 만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를 파헤친 기자가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다. 처음에는 단순 주거침입 사건 같았던 이 사건은 파면 팔수록 닉슨 대선캠페인 본부와의 관련성이 드러났다.

나중에 백악관에 닉슨이 직접 범죄행위를 지시한 정황이 녹음된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닉슨은 이를 은폐하려다 탄핵 위기에 봉착하며 결국 사임하고 만다. 우드워드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라는 책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우드워드가 쓴 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40여년의 기자생활 동안 18권의 책을 쓰는데 이중 12권이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 오른다. 넌픽션 부문에서 이처럼 베스트셀러를 많이 쓴 사람은 없다. 그의 책은 수많은 관계자들과의 심층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를 발탁한 브래들리는 “탐사보도에 관한한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기자”라고 평했다.

그 우드워드가 요즘 다시 워싱턴 정계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신간 ‘공포’(Fear) 때문이다. 백악관 등 트럼프 행정부 내 고위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이 책에 따르면 트럼프 밑에서 일하고 있는 부하들조차 그를 “백치” 또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물”로 생각하고 있으며 한미 FTA를 폐기하려고 만들어 놓은 문서를 재무장관이 빼돌려 트럼프가 서명하지 못하게 막는 등 코미디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책 이야기를 들은 트럼프는 펄펄 뛰며 “사기”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트럼프와 우드워드 말 중 누가 더 신빙성이 있느냐는 물을 필요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이다. 우드워드와 같은 용기 있고 유능한 언론인들 덕분에 미국인들은 지금 같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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