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평등 속 평등

2018-09-08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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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내가 겪은 문화적 충격 중 하나는 대학 강의실에서였다. 교육행정학 강의 중에 교수가 정치문제로 화제를 돌리면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가난한 시민들의 노동을 착취해서 상위 10%의 탐욕을 채워주는 비인도적인 제도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주의는 가능한 한 평등하게 부를 분배해서 빈부의 차이를 극소화 하는 인도주의적 제도라는 주장을 펼쳤다. 한 예로, 당시 사회주의 사회인 동독에서는 직원 대 고용주 간 보수 비율이 1대 4인데 비해 미국에서는 1대 수십 또는 수백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강의실에 갑자기 긴장감이 돌면서 남학생 한명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저는 사회주의에 대한 교수님의 주장에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현재 동독의 정치경제 상황을 보면, 사회주의는 붕궤 직전에 있습니다.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동독주민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동독이 서독 체제로 흡수 통일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 발언에 몇 명의 학생들이 동조하면서 강의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노련한 교수가 부드러운 태도로 대화를 진행하여서 험악한 대결은 피할 수 있었다. 동, 서독 통일 30년이 가까워 오는 현재, 당시 강의실에서 일어났던 교수 대 학생의 논쟁에서 어느 쪽의 주장이 옳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때 나는 “반공을 국시의 제 일로 삼는… ”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교수가 강의실에서 공공연히 공산주의에 가까운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것에 놀랐고, 학생이 교수라는 권위적 존재에 버릇없이 대드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다.

오래전 강의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린 것은 최근 수주 동안 전화불통의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 4~5년 동안 계속해서 매달 조금씩 오른 전화요금이 마침내 합당치 않은 액수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귀찮아서 미루던 문의전화를 전화회사에 한 것이 사달이 났다. 사건이 해결되기는 했지만 소비자로서 거대한 기업체와 상대하는 것이 참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 불편을 겪고 있던 중 우연히 이 회사가 앞으로 수백억 달러의 감세혜택을 받을 것이며, 이런 혜택에도 불구하고 직원 감원조치를 계속하고 있다는 뉴스를 읽었다. 지난 3년 동안 중서부 몇 개 주에서 수천 명을 해고했고, 직원해고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지속적인 성장과 엄청난 세금감면으로 회사 자산은 폭발적으로 늘고, 경영진의 소득 역시 엄청나게 올라가고 있는데, 경비절약을 위해서 수십년씩 일한 직원들을 인정사정없이 해고시킨다는 것이 비인도적인 정도를 넘어서 무자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용주의 소득이 천문학적 숫자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세금감면을 받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면서 자선기금도 듬뿍 내는 큰손들이 이들 부자라는 주장이 틀린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고용자들의 소득이 제로가 되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인도주의 여부를 떠나서 사회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불안의 씨가 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불평등이 아주 사라질 수는 없지만 불평등 가운데에서도 최소한도의 공평의 질서는 있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자산 1조 달러가 넘는 회사가 탄생했고, 천만장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나라이다. 국민들의 최저생활, 균등한 교육기회, 믿을만한 건강정책을 보장하는 것은 어떤 경제이론이 옳은 가의 논쟁 이전의 국민의 기본 생존권이라고 생각한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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