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버드의 미운 오리새끼들

2018-09-08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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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민족이 따로 있는 걸까? 미국의 고등교육 역사를 보면 ‘너무 공부를 잘해서’ 주류사회로부터 질시를 받은 케이스가 두 번 있(었)다. 20세기 초반 유태인 학생들 그리고 21세기 초반 아시안 학생들이다.

탁월하게 우수한 학생들은 어느 인종/민족에나 있지만, 유태인과 아시안의 경우는 그런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최고명문 하버드는 1920년대 ‘유태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실력에 따라 다 입학시키다가는 대학이 유태인 학교가 되고 말겠다는 우려가 심각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하버드는 ‘아시안 문제’로 다시 골치가 아프다. 이번에는 소송까지 걸려있으니 단순한 두통 이상일 것이다. 하버드의 오래고도 비밀스런 입학사정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시스템을 전면 재조정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소송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이라는 비영리단체가 4년 전 하버드를 상대로 제기했고, 다음 달로 재판 날짜가 잡히면서 미 전국의 대학들과 아시안 단체들, 민권단체들의 관심이 총 집중되고 있다.

소송/재판의 핵심은 ‘다양성’이냐 ‘차별’이냐의 판단이다. 소수계우대 정책에 반대하는 SFFA는 하버드가 입학사정 과정에서 인종/민족 구성비에 너무 비중을 두면서 아시안 지원자들을 찍어서 ‘차별’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하버드는 캠퍼스 내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인종’을 입학사정의 한 요소로 활용했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아시안 입학지원자들이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에서 푸대접 받는다는 것은 더 이상 의혹이 아니다. 아시안은 다른 인종에 비해 SAT 점수가 훨씬 높아야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확인되어온 사실이다. 2009년 프린스턴 대학 조사에 의하면 학업성적이 비슷한 학생들이 명문대학 합격권에 들기 위해 필요한 SAT 점수는 백인 1320점, 히스패닉 1190점, 흑인 1010점인데 비해 아시안은 1460점이다.

한인, 중국계, 인도계 등 아시안 학생들이 학업성적에서 높은 평점을 확보하고도 성격 인성 평가에서 여지없이 점수가 깎여 생기는 결과이다. 하버드 입학 사정관들이 용기, 유머감각, 긍정적 성향 등 개인평가에서 아시안들에게 의도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은 2013년 하버드의 자체 내부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그 결과 하버드의 경우 아무리 우수한 아시안 학생들이 아무리 많이 지원해도 전체 합격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 내외로 고정되었다. 사실상 아시안 쿼타제로 ‘아시안 벌점’ ‘죽의 천장’ 혹은 ‘인종적 균형 잡기’로 표현된다.

자유와 평등, 기회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배경은 주류의 텃세이다. 소수계가 ‘소수’일 때는 관대하다가 숫자가 커지는 순간 경계와 배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수없이 반복되어온 미국의 역사이다.

19세기까지 유태인은 소수 중의 소수였다. 이민자들이 첫발을 딛는 뉴욕의 유태인 인구는 1880년 8만명으로 전체의 3%에 불과했다. 눈에도 띄지 않아서 차별도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동구 출신 유태인들이 대거 밀려들자 상황이 바뀌었다. 1910년 유태인 인구는 120만명을 넘어서고 1920년이 되자 도시인구의 30%에 달했다. “유태인이 너무 많다”는 인식과 함께 혐오와 차별이 공공연해졌다. 대학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 유태인 2세 3세가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학 캠퍼스들을 휩쓰니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하버드의 한 기숙사는 ‘리틀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WASP) 엘리트의 대학에 ‘근본 없는’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상황을 하버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들 미운 오리새끼 때문에 ‘진짜 미국학생들’이 다른 대학으로 가버린다면 하버드는 끝장이라는 논리였다.

그때 도입된 것이 ‘지리적 균형 잡기’였다. 동부에 국한하지 않고 미 전국에서 인재들을 골고루 뽑아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정책이었다. 한 꺼풀 벗겨보면 동부에 밀집해있는 유태인 입학을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유태인 쿼타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같은 논리, 같은 의도로 하버드는 ‘인종’을 내세우며 아시안 입학을 제한하고 있다. ‘인종적 균형 잡기’이다.

이민의 나라에서 후발주자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100년 전 미운 오리새끼였던 유태인은 지금 캠퍼스의 백조들이다. 미국인구의 3%인 유태인들이 미 전국 대학 교수진의 9%를 차지하고 있다. 의학 법학 사회과학 등 전통적 유태인 전공분야에서는 전체 교수진의 1/3이 유태인이다.

하버드에서 유태인 푸대접은 이제 구경도 할 수 없다. 조부모와 부모가 동문인 유태인 학생들이 많으니 오히려 특혜 대상이다. 유태인 커뮤니티가 차별의 장벽을 꾸준하게 허물며 힘을 기른 결과이다. 21세기의 미운 오리새끼인 아시안도 같은 성과를 내리라 믿는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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