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2018-09-05 (수) 남상욱 경제부
작게 크게
2002년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어느 TV토론에서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했던 말이다. 서민들의 일상의 삶이 팍팍해진 상황을 빗대어 했던 이 말은 결국 권 후보에게 약 100만표를 안겨줘 한국의 진보 정당 후보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6년 전 과거의 이야기를 그것도 한국적 특수성에서 나온 일화를 들고 나온 까닭은 최근 미국의 경제적 상황에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표현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주요 경제지표만을 놓고 보면 미국의 경제는 분명 호황임에는 틀림없다.


2분기 GDP는 연율 4.2%로 급등해 2014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실업률도 거의 완전 고용 수준에 가깝다. 2009년 10월에 10%까지 올라갔던 실업률도 올해 5월에는 3.8%까지 떨어져 1970년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8월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실업률도 3.9%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거시경제의 지표들은 서민들의 삶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호황이라는 경제 상황이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빠듯하기 때문이다.

연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평균 2.7%의 임금 상승이 이뤄졌지만, 인플레 상승이 2.9%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7월 10.78달러였던 시간당 실질 임금은 올해 7월에는 10.76달러에 그쳤다.

이와는 달리 미국내 350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이 일반 직장인의 그것에 비해 312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돼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었지만 우리네 살림살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시장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체제에서 개인들은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성장을 달성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이지만, 경쟁의 출발선이 불공정하다는데서 문제는 시작된다.

어쩌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는 명제를 다시 검토하는데서 대안 마련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삶에서 공정한 경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에도 ‘난 이렇게 많이 벌어서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최상위 계층이 되기 위해서 다른 가치들을 희생해가는 것이 과연 괜찮은 삶인지 진지하게 되묻는 일에서부터 말이다.

<남상욱 경제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