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신저 죽이기

2018-09-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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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를 쏘다” 라는 문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플루타르크의 ‘위인전’이다. 지금은 중앙아시아의 소국이지만 한 때 로마와 맞먹을 정도로 강대한 국가였던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는 자신이 이룬 업적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칭송이 높아갈수록 오만도 커갔다. 비판이나 충언을 하는 신하는 멀리 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을 갖다 쓰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로마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가져온 전령의 목을 평화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베었다. 그 후 아무도 그에게 나쁜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고립된 채 나라를 뺏기고 로마에 굴복해 신하로 여생을 마쳤다.

문재인 정부 인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허위 혼인 신고를 한 안경환을 조국 민정수석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법무장관으로 밀어붙이려다 실패하는 등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7명이 낙마했다. 김상곤 교육 부총리는 논문표절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개국 공신이란 이유로 임명을 강행했고 이와 함께 병역 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자는 인사에서 배제한다는 문재인 정부 5대 원칙도 폐기됐다.


그러나 초기 인사 중 가장 논란을 일으켰던 것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 발탁이다. 탁현민은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매매를 공개적으로 찬양한 인물이다. 그는 ‘나의 서울 유흥 문화 답사기’라는 글에서 서울의 성매매 집결지를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8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상품이 진열돼 있다며 “사무치게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된다”고 적었다.

누가 봐도 청와대 고위 관리로 일하기에는 부적절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임에도 쇼를 잘 한다는 이유로 문재인은 임명을 강행했다. 그 후 탁현민은 연예인 평양 공연과 판문점 회담 도보 다리 산책 등을 기획해 문재인 지지율을 80%까지 끌어올리는데 공을 세웠지만 그렇게 올라간 지지도는 이제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 인사보다 더 질이 나쁜 것은 최근 벌어진 황수경 통계청장 해임이다. 황 청장 재임 기간 동안 문재인 정부에 불리한 통계가 쏟아진 것은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월 30만 개에 달하던 일자리 창출은 이제 5,000개 선으로 줄어들었고 저소득층 소득이 사상 최대폭으로 줄면서 소득 양극화는 더욱 더 벌어졌다. 청년 실업률, 향후 경기 지표 등 뭐 하나 좋은 수치를 찾기 힘들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얼굴을 들지 못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런 통계가 나오는 것은 통계청장의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의 탓이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사태가 나빠지고 있음을 알리는 메신저를 죽이는 것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장이 갈린 후 통계 수치가 좋아진다면 어떤 국민이 그 말을 믿겠는가.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쁜 소식을 가져온 메신저의 목을 친 아르메니아 왕과는 달리 로마는 개선장군의 마차에 노예를 태워 “죽음을 기억하라”를 계속 외치게 했다. 로마가 이기고 아르메니아가 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 때 문재인이 상사로 모셨던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발탁한 김영삼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을 남겼다. 통계청장의 목을 자른다고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문재인은 하루 속히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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