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들이 왜 분노하는 가

2018-09-01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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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까운 분의 6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부부모임이 있었다. 모인 곳이 일식집이어서 멍게 해삼 등 해산물 요리가 나오자 한 커플이 ‘추억의 멍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창 달콤했을 신혼에 부부가 멍게 한 접시를 놓고 싸운 이야기였다.

30년 쯤 전 어느 날 부부는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 멍게 한 봉지를 샀다. 배가 고팠던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멍게를 씻고 다듬고 자르고 … 해서 한 접시를 만들어 남편에게 전하고는 거실로 가보니 멍게가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이 TV를 보며 다 먹어 버린 것이었다.

필시 부엌일이 서툴러서 멍게 한 접시도 ‘일’이었을 새내기 아내는 열 받고, 남편은 미안해하고, 그런데도 아내의 화가 안 풀리자 남편이 덩달아 화를 내면서 부부싸움이 된 것 같다. 하찮은 멍게 한 접시를 두고 아내가 과잉반응을 보인다고 남편은 생각했을 수도 있다.


멍게 한 접시가 하찮지 않은 것은 그 비슷하게 하찮은 것들이 신혼 초 대부분 부부들의 싸움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기점으로 여성과 남성은 전혀 다른 현실을 만난다. 남녀평등하게 교육받고 성장한 여성들이 가정을 이루고 나면 갑자기 타임머신에 태워진다.

그곳은 전통적 가부장 의식이 군림하는 곳, 남편은 지시/지배하고 아내는 순응/순종하는 구시대의 구도가 점령군처럼 밀려든다. 남편에게는 편하고 아내에게는 불편한 구도에서 마찰은 불가피하다. 학창시절 똑 부러지게 명석하던 여학생들은 결국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입 다물고 분노를 삭이며 ‘착한 아내’로 변신하는 인고의 세월을 맞는다. 결과는 인간적 성숙이거나 화병이다.

참는데 익숙하던 여성들의 분노폭발이 심상치 않다. 자기주장 내세우지 않고 다소곳한 게 여성다움이라는, 여성은 여성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오랜 주입식 교육의 굴레를 벗어던진 여성들이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회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분노가 용암 끓어오르듯 터지더니 멈추지를 않는다.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 여성운동은 세 번의 이정표적 사건을 거쳤다. 세 번의 집단적 분노폭발이다.
첫 번째는 참정권 획득이다. 지난 26일은 미국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게 된 지 98년이 되는 기념일이었다. 1세대 여권운동가들이 여성 참정권을 요구했을 때 사회적 반응은 “무슨 이런 해괴한 주장이 있나?”였다.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여자들이 왜 투표권이 필요한가, 남편 하는 대로 따라 할 걸 굳이 직접 투표하겠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 조롱과 무지 앞에서 여성 지도자들은 단식투쟁을 불사하는 거센 분노의 시위를 전개했다.

두 번째는 평등권 획득이다. 교육, 취업, 승진, 해고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남녀평등이 법으로 보장된 것은 60년대 여권운동 덕분이다.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에 해외토픽 감으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울지 않는 아기에게 기득권 세력은 젖을 주지 않는다. 60년대의 거대한 사회변혁 운동들이 1972년 교육 개정법과 균등 고용기회법 제정의 토양이 되었다.

세 번째는 정계 진출이다. 1991년 클레어런스 토마스 대법관 후보에 대한 상원 인준청문회가 기폭제였다. 명백한 성희롱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법관으로 인준되는 사태를 보면서 여성들은 분노했다. 법과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한 여성들은 1992년 선거에 대거 출마했고,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갔다. 결과는 미국 역사상 기록적인 여성 정치인 탄생이었다. 연방하원에 24명, 연방상원(당시 여성의원 2명)에 4명의 여성의원들이 입성하면서 1992년은 ‘여성의 해’로 기록되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분노의 시위는 여성의 몸에 관한 것이다. 여성의 몸을 함부로 마음대로 다루는 남성들에 대해서 사회는 너무나 관대하고, 그로 인한 고통을 말하는 피해 여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데 대한 분노표출이다. 피해 자체가 수치스러워 입 다물고 속으로 앓고 있던 여성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입을 열었다.


지난해 10월 할리웃 거물 하비 와인스틴의 수십년 성추행/폭력 행위가 보도되면서 결성된 #미투 운동은 각계의 힘 있고 오만하던 남성들을 줄줄이 추락시켰다.

사실 여성 분노의 장은 그 전에 형성되어 있었다. 트럼프 덕분이었다. 여성들에게 함부로 하고 그걸 자랑삼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여성들은 대대적 반대시위를 했다. 이후 트럼프 정책 반대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성추행 사건들, 몰카 사건, 성범죄 관련 성편파적 수사, 안희정 재판 등이 맞물리면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여성시위가 지난여름 3차례나 열렸다.

분노를 누르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던 여성들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꾹꾹 참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사회가 한 단계 진보할 때가 이른 것이다. 11월 중간선거가 2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권과 정책에 분노한다면 표로 표출하기를 바란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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