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21)제35대 John F. Kennedy 대통령⑬

2018-08-24 (금)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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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을 못한채로 영원히 미궁속에 묻혀버린 JFK 의 암살”

Warren조사위원회는 9개월동안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 총격탄도 전문가들과 기타의 전문가들의 분석들을 검토한 끝에 Oswald 와 Ruby 가 단독 범행자들이었으며 두 사람들의 배후가 없었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러나 많은 미국사람들은 조사위원회가 소홀했었던 부분이 있었고 너무 많은 문제점들을 미궁에서 밝혀내지 못했 다고 생각하였었다고 한다.

암살사건이후 16년만인 1979년에 미국하원의 특별조사위원회는 1년여의 조사끝에 발표한 보고서에 새로운 총격음성 분석방법을 적용해본 결과 한개 이상의 총기가 쓰여졌었다고 생각하며 Ruby 의 배후에 누구가 있었다고 생각된다고 결론을 지었으나 더 구체적인 해답을 하지는 못하였었다고 한다.


암살사건 이후 TV 에서는 연속해서 암살순간의 장면을 방송하였었으며 미국사람들은 대통령이 방심하고 군중속에 뛰어들어 함께 어울릴수도 없게된 미국의 처지에 대해서 통탄하고 있었다. JFK 의 지지자나 반대자를 가릴것없이 온국민이 세계 최강국이된 새롭고 젊은 미국의 상징인 아까운 지도자의 요절에 경악하였으며 줄줄이 흐르는 눈물을 딱을 생각도 않은채 애통들을 하고있던 흑인들의 슬픔을 보며 “과연 진정한 국장이라는 것은 이렇게 슬픈것 이로구나” 라고 중얼거리던 필자자신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었다.

JFK 의 암살후 그의 지지자들은 그의 업적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극찬하였으나 어떤 언론인은 그가 살았을때 받았어야할 영예를 죽은후에야 받고 있다고 하였으며 살았을적에 역사에 기록이 남는 인물이 되어보고자 했던 그의 염원은 이제 한층 더 높히 미국의 신화속에 오르는 인물로 승화되었다고 논평하였다.

JFK 의 짧은 재임기간은 그가 입법되도록 노력하고 성공했던 법률들의 숫자보다는 그 입법들을 추진해 나가는 동안에 치솟았던 미국민들의 사기앙양이 아마 더 중요했으리 라고 생각된다. JFK는 대정치가로서의 경험이 미숙한채로 대통령에 취임하여 배우면서 완숙해져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짧았던 재임기간 동안에 JFK 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미국이 최고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것은 깨달았으나 불행하게도 지구의 어느곳은 자유 스럽지 못할것이며 어떤 한 이념이나 주의가 전세계를 휩쓸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받아 드릴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그가 완성시킨 업적들보다는 그가 남긴 희망에찬 큰 약속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인물이다.

JFK 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존중했다가 Cuba 의 Bay of Pigs 참패등 크게 낭패를 여러번 경험했다고 생각하여서 전문가들을 싫어하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재임중에 여러개의 “Think Tank” 들이 설립되었고 유사이래 가장 활발하게 미국의 대학교들이 국방부와 CIA 를 위한 research 에들 참여하였었다고 한다.

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
다음호에 King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을 번역해 보고자 한다. King 목사의 연설은 그 특유의 high baritone 음성으로, 영어로, 들어야 하고 그의 독특한 어법과 청중의 mood, 호응, 찬사, 박수등에 맞추어서 구절마다 알맞는 간격을 아주 적절하게 두는 탁월한 연설방법등과, 함께 어울려서 입체적으로 들어야 하는 까닭에 평면적으로 연설의 번역을 조심스럽게 해보지만 그의 연설의 참맛이 충분히 전달되기가 어려운것 같다. 혹 영어가 조금 부족하여 그의 연설내용을 다 얼른 이해하기 힘들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도 이제 기회가 되시면 King 목사 연설 녹음을 한번 들어보시기 권장한다.

King목사는 연설에서 자신이 원하는 뜻을 화살로 과녁을 꿰뚤듯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의 연설내용에는 깊은 신학적인 바탕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통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을 써서 성경을 한번도 보지않은 사람에게도 예수의 뜻을 아주 알아듣기 쉬운말로 전달하는 학식이 있는 사람이다. 그의 연설에는 성경만큼이나 비유법이 자주 쓰이고 시적인 표현도 많아서 얼핏 그의 의중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몇초가 걸릴 때도 있는데 그가 쓰는 단어들의 음률 (rhyme)도 잘맞아 아름다운 시낭송을 듣는것 같이 착각될적도 있지만 인간이 가능한 최고의 음계의 끝까지 다 올라가서 몇초동안 목소리를 떨고 있는 기가막히는 Tenor 의 노래를 듣는것 같은 착각이 들적도 있다.

그의 연설은 가슴이 빠게질 정도로 억울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하고 있는 말임은 분명하지만 강열한 “분노”는 있는 대신 “저주”는 없다. 놀라웁게도 그는 전혀 흑인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 꼬불 꼬불하고 캄캄한 턴넬속에서 칼날같은 모서리들이 나있는 쪼개진 바위돌들 위를 묵묵히 걷고있지만 저 멀리 턴넬끝에 보이는 밝은 빛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의 절규이다. King 목사는 무자비한 공권력과 경찰의 폭행에 비폭력 평화주의로 저항할것을 주장하고 실천해 왔었다. 그는 1964년에 Nobel 평화상을 받았다. “I have a dream” 이란 연설에서 King 목사는 “Negro” 라는 단어를 여러번 썼고 “black” 이란 단어는 두어번 정도만 썼다. 그런 이유가 분명히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Negro 를 무엇이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고심하였다. King 목사가 의도했었다고 생각되는 적절한 한국어가 없었다고 생각되었다. “깜둥이” 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두 단어중에서 “깜둥이”란 단어가 그의 의도를 더 가깝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미국에서 “The Asian” 이나 “The Oriental” 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Negro 나 Nigger 라고 불리우는것 보다 과연 얼마나 더 잘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하, 흑백간에 인종차별 문제로 다투고 있을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처럼 약해보이는 흑인편을 들어 주어야 하는 사람들임을 깨닫게 되리라고 생각된다.


Lyndon B. Johnson 대통령은 1968년 3월 31일에 월맹폭격중지, 휴전협상제의를 하고 동시에 대통령 불출마선언을 했고 3일후에 월맹은 휴전협상을 시작하겠다고 하였는데 그다음날인 4월 4일에 King 목사는 백인우월주의자 James Earl Ray 에 의해 Tennessee 주의 Memphis 시의 motel 에서 39세의 젊은 나이에 암살된다. King 목사는 시청 위생국직원들의 파업을 격려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중이었다.

그의 암살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의 100 개 도시에서 흑인들이 방화, 절도 등을 하는 폭력시위를 했었다. Washington 시내의 흑인빈민가들에 흑인들이 방화를 하여 불타는 모습을 백악관에서 볼수 있었다.

여러번 반복해서 들어도 매번 처음 듣는것 처럼 들리는 이 16분짜리 King 목사의 연설에 씁쓸한 후문이 하나 있다. 이 연설의 판권을 King 목사 자녀들이 가지고 있고 녹음 cassette 판매 수입이 수백만불이 된다고 하는데 어떤 민권운동자들은 King 목사 자녀들이 그 수입을 전혀 민권운동에 기부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고 한다. 어느쪽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씁쓸한 후문이다. 요즘은 internet 을 써서 이 연설을 무료로 들을 수가 있다.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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