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8 본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입상작] ‘틈’

2018-08-20 (월)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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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작

[2018 본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입상작]  ‘틈’
노을, 그 끝으로 새 두 마리가 세월을 끌고 날아간다

저녁을 먹는다
무엇을 삼켜도 찔릴 것 같은 정처 없는 식사
당신은 끌려간 세월 속에 깊은 눈동자를 묻어버리고
나는 허옇게 바랜 벽을 닮은 후회를 바라본다

건조한 빛갈피에 고여있는 꿈의 흔적을 찾아 헤매듯
당신은 상처 입은 코다리 구이 가시를 고요하게 발라내고
나는 오이무침을 서걱서걱 씹으며
그늘에서 머뭇거리는 된장국 속의 누런 시금치를 건져낸다
온 세월을 품어도 병아리가 되지 못한 슬픔으로 돌돌 말은
계란말이를 너울너울 풀어헤친다


당신의 얼굴에서
애처롭게 견디는 애정이 흐르고
식탁 너머로 나른한 노을이 깔린다
그리움을 안고 새들이
다시
날아온다

당선소감 l 박경주

참 기쁘다. 오랜만의 기다림이었다. 순간, 온 세상이 빛났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감사합니다! 제 시를 뽑아주신 나태주, 한혜영 심사위원께 감사합니다. 문학의 길을 성실하게 살아가며, 제가 시를 쓸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는 “워싱턴 문인회” 선배님들께 감사합니다. 저와 같이 마주 앉아, 먹고 마시고 마음을 나누는 눈부신 친구들께 감사합니다. 나의 매일을 봄빛이게 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일상에서 틈과 결을 찾아내고, 그 사이의 떨림을 기억하려 노력합니다. 작은 이미지를 만나고, 단어를 찾아내고, 문장을 다듬어가는 과정은 제가 세상을 견디는 힘이며 설렘을 완성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제게 시는 일상 속에서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순간들의 첫 기억입니다.

기억 속에 깊이 박힌 낯설고 아프고 때로는 빛나는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 헤아림을 나누는 것입니다.

작고 가볍고 힘없고 아픈 것들을 함께 나누려 했던 시에 대한 첫 마음 잊지 않고, 고요하게. 다정하게. 시대를 흐르며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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