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속 상상의 산보 90초

2018-08-18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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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도심 빈민 밀집지역에 녹지대를 만들고 주민들의 정서적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빈민촌 풍경은 황폐함. 콘크리트와 시멘트, 쓰레기 더미와 폐차들 그리고 공터마다 웃자란 잡초와 피폐한 사람들로 특징지어진다. 유펜의 의과대학 연구진은 그 지역 공터 30여 곳을 선정해 깨끗하게 청소하고 잔디와 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쳐서 관리했다.

정갈한 녹지대가 생긴지 18개월, 인근 주민들은 이전에 비해 우울감이 줄고 자존감이 생겼으며 정신건강도 개선되었다는 것이 7월말 발표된 연구결과였다. 걸어 들어가고 싶은 초록의 공간, 쉼을 얻을 수 있는 나무그늘이 주민들의 척박한 삶에 숨통을 터준 덕분일 것이다.


피폐하고 황폐하며 척박한 것은 빈민촌 거리 풍경만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아등바등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여유 없는 그 마음속에도 초록의 쉼터가 필요하다.

내 속에서 생겨났지만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 나를 잡아먹는 괴물이 있다. 분노라는 괴물이다. 지난 한주 그 괴물에 여러 사람이 잡아 먹혔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비상식적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분노는 눈 먼 괴물’이기 때문이다.

일요일이던 지난 12일 새벽 새크라멘토 인근 5번 프리웨이에서 자동차 추돌사고가 났다. 처음 얼마 간 두 차가 그냥 갔던 것으로 봐서 큰 사고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30대 후반인 두 운전자는 프리웨이 한 가운데서 차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했다. 격분한 한 운전자가 차에서 야구방망이를 가져와 상대 운전자를 때려 숨지게 했고, 그 자신은 어두운 프리웨이를 걸어 차로 돌아가다가 다른 차에 치여 숨졌다.

단순 사고가 격한 싸움으로 마침내 살인으로까지 간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한 것은 괴물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성과 판단력을 마비시켜 아무 것도 눈에 보이는 게 없도록 만드는 괴물이다.

같은 날 저녁 유타, 솔트레이크 시티 인근 지역에서는 40대 남편이 가정폭력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남성은 아내와의 불화를 고민하다가 함께 공원에 가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시도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감정이 격해지면서 아내를 마구 폭행하자 주변 목격자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날 자정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새벽 경비행기를 몰고 와서 그대로 자택으로 돌진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가옥 1층 앞부분과 비행기가 화염에 휩싸이고 화염 속에 그도 숨졌다. 그의 아내와 아이는 무사했다.

분노의 화가 불 화(火)자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화(火)가 나면 불(火) 같이 타오르다 돌이킬 수 없는 화(禍)를 당하곤 한다. 영어에서 화난 상태를 ‘mad’로 표현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분노는 순간적 광기(madness)이다. 광적인 무모함으로 시작해 후회로 끝나는 것이 분노의 여정이다.

분노는 사랑만큼 자연스런 원시의 감정이다. 안고 싶은 사랑의 감정이 있어 번식이 가능했고, 생존을 위협하는 상대에 분노로 맞섬으로써(혹은 도망침으로써) 종으로서 인간은 살아남았다. 원초적 감정인 분노는 현대의 삶에도 필수적이다. 차별과 압제, 불의에 분노함으로써 정의가 세워지고, 자신의 무능에 분노함으로써 발전이 가능하다. 분노의 순기능이다.


반면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많은 고통의 역사는 고삐 풀린 분노에서 시작된다. 분노에 차서 무책임하게 내뱉은 말과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 사이에서 관계가 틀어지는가. 논리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뇌 연구 권위자 중에 질 볼트 테일러 박사가 있다. 신경해부학자였던 그는 30대 중반이던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8년의 회복기간 자신을 토대로 뇌 연구에 집중했다.

우리의 감정에 대해 그는 ‘90초의 법칙’을 말한다.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우리 몸의 자동적 화학반응. 화가 나면 아드레날린, 코티솔 같은 화학물질, 즉 호르몬이 분출되어 몸에 퍼지는데 90초 지나면 말끔하게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의 분노는 90초 아니라 90분, 90시간씩 이어진다. 감정에 생각을 주입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분노의 감정이 생기면 그동안 쌓여있던 서운함, 실망, 미움 등 온갖 부정적 생각들을 버무려 넣음으로써 분노의 불길을 활활 키워낸다는 것이다.

90초의 지혜가 많은 불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느낌이 일어나고 퍼져나가고 사그라져서 재가 되는 과정을 묵묵히 이성적으로 지켜보는 지혜이다. 마음속에 상상의 푸른 쉼터가 필요하다. 화가 치솟을 때마다 90초씩 상상의 산보를 간다면 세상은 훨씬 평온해질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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