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사기로 만드는 권총 ‘해방자’

2018-08-11 (토) 한영국 소설가
작게 크게
신원조회도 받지 않고, 연령 제한도 없으며, 메탈 디텍터도 무사통과하는 데다, 시리얼 넘버도 없고, 만들기도 간편한 3D 프린터 총의 설계도 도면이 벌써 1,500여 건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자칭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총에 대해 무한 애정을 가진 코디 윌슨이라는 사람이 이 플라스틱 총의 설계도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여기에 텍사스의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Defense Distributed)’라는 그룹이 가세해 이제 총은 복사기로 무한 제작할 수 있는 하나의 단순 ‘물품’이 되었다.

물론 이를 막아보자는 정부의 노력이 있기는 했다. 국무부가 나서서 국제 무기거래법에 저촉된다며 이를 막으려 했지만 윌슨은 제1 수정헌법의 표현의 자유를 들어 2015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결국 지난 1일부터 인터넷 포스트가 허용됐다. 하지만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는 이미 일주일 전에 이를 인터넷에 올렸고, 벌써 다운로드해 간 사람이 많다.


이 플라스틱 총의 이름을 보면 더 아찔하다. ‘해방자(Liberator)’가 그 명칭이니, 그들이 바라는 구원이 어떤 것인지가 훤히 보인다.

요즘 3D 프린터는 웬만한 시설에는 다 있다. 비싼 것도 있지만, 싼 것은 100달러 대에 구입할 수 있다. 재정이 괜찮은 시의 도서관에는 고성능 입체 프린터를 비치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등학교에도 두세 대씩 갖춰져 있다.

미술대학에서는 이 프린터를 이용해 작품들을 만들고, 돈을 주고 구입하지 않고 거실에서 3D 프린터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총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는 플라스틱과 조그만 금속 조각뿐이라니, 일단 프린트가 시작되고 나면 규제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8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주 법무장관들이 이 인터넷 포스트를 잠정적으로나마 저지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일단 주민들이 이 사이트를 방문할 수 없게 했다고는 하지만, 인터넷 정보라는 것이 세계를 넘나들게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모두 상직적인 노력일 뿐이다.

저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앞서 의회에서 통과된 관련법은 플라스틱 총기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트럼프의 영향으로 의회는 눈을 감고 있고, 주정부의 법무장관들이 발등의 불을 끄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형국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31일 아침 트윗을 날리며, 이 사안에 관해 NRA와 통화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나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미국에서 총기의 프린터 도면이 공개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해 중국에서는 제4차 국제군사 경연대회(International Army Games)가 열리고 있다.

러시아에서 시작한 이 대회는 이제 세계 30여 개국이 참가하는 연례 전쟁놀이 판이 되었다. 올해 주최국인 중국은 자국의 무기를 팔고 싶은 의도가 다분하지만, 이미 무기를 만들어 팔고 있는 이스라엘과 러시아도 이 게임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두려움을 일으켜 상대를 제압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무기의 목적인 살상을 승부 게임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 경제 활동의 일부로 보는 시각, 무조건 이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더해져 왜곡된 ‘강자’의 이미지가 나온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남보다 내가 우위에 서고 싶은, 도무지 소화흡수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평등’ 의식의 체증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영국 소설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