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과 함께’와 ‘헬조선’

2018-08-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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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의 기세가 무섭다. 이 영화는 지난 해 12월 개봉한 ‘신과 함께-죄와 벌’의 후편인데 개봉한 지 7일 만에 관객수 700만을 넘었다. 한국 영화사상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 영화는 지난 1일 개봉 첫 날에도 124만으로 역대 1위를 기록했고 4일에는 146만으로 1일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대로 가면 1,000만 돌파는 시간문제고 역대 최고 흥행 영화인 ‘명량’(1,761만)과 2위 ‘신과 함께-죄와 벌’(1,441만)을 뛰어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주호민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저승의 3차사와 총기 오발 사고로 원귀가 된 한 병사의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다. 전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락부락하면서도 착한 인상으로 ‘마블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마동석이 부모 없이 혼자 남은 아이를 돌보는 할아버지를 지키는 귀신으로 나오는 점이다.

영화 내용 자체는 그다지 뛰어날 게 없다는 게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일부에서는 한국 날씨가 요즘 워낙 더워 사람들이 극장으로 많이 몰렸기 때문으로 보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극장에서 하는 영화가 이것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주 요인의 하나는 아마도 분노와 불만에 가득 찬 요즘 한국인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여기서 가진 자와 철거반원은 악당이고 한국은 돈 있고 힘 있는 자만 잘 사는 ‘헬조선’이다. 총기 오발로 죽은 뒤 원귀가 돼 지옥으로 끌려온 병사조차 한국 같은 데서 다시 태어나기 싫다며 환생을 거부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의 하나는 저승사자가 재개발 하러 온 철거반원들을 때려잡는 부분인데 나중에 알고 보면 이들은 사실 억울하다. 돈을 주지 않고 쫓아내려 한 것이 아니고 1억이라는 정당한 보상을 해주고 나가라는 것인데 할아버지는 이를 거부한다. 이 돈은 이 집 수호 귀신으로 나오는 마동석이 펀드에 투자했다 날리는 바람에 온 가족이 갈 데가 없게 된 것이다. 잘못을 따지자면 투자에 대한 기초 상식도 없이 돈을 굴린 귀신에게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공매도로 펀드를 추락시킨 투기 자본이 나쁜 놈이 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저승에 간 사자마저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지옥에 살고 있고 내가 힘든 것은 주위의 나쁜 놈들 때문”이라는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미국, 중국, 일본 4개국 대학생을 상대로 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의 81%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쟁터’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41.8%, 미국 40.4%, 일본 13.8%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을 수 있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27%로 30년 전의 38%보다 10% 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세상은 전쟁터며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생지옥이라는 것을 느끼며 자라고 있는 셈이다.

학교를 나와서는 가혹한 취업 전쟁에 시달리다 50대면 너도 나도 명퇴 후 치킨집 사장이 되어 만나고 그나마 5년 후에는 80%가 망한 후 대책 없는 노후를 보내야 하는 것이 한국의 냉정한 현실이다. 이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한 ‘신과 함께’의 속편은 무한히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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