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32년(1895년) 12월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라는 칙령이 내려졌다. 수백년 간 배달민족의 전통으로 여겨왔던 상투가 하루아침에 잘렸으나 몸,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로 부터 받은 것이라는 성리학자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통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천이 된 후, 흠 없고 점 없는 양(베드로 전서 1:19)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나이 들어가면서 반점이 더 생겨 “어차피 죄인인데 뭐”라며 위안을 해본다. 산행을 자주 하다 보니 선 블록 로션도 크게 효과가 없는 듯하다.
어릴 땐, 동네 건달의 문신한 팔뚝을 보며 섬?하기도 했으나, 미국 와선 여자들의 등, 팔, 종아리 등에 새겨진 문신을 보니, 옛날 전신을 잉어 문신을 한 여성의 나체 위에 생선 초밥을 올려놓은 뉴스 사진을 보아온 터라 별로 거부감을 못 느낀다. 요즘 들어선, 문신 전문점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유행이 되어 버렸다.
찬송가 중에서 크리스천 락 음악이 주를 이루는 호주의 힐송 교회 음악을 자주 듣는다. 시끄러운 금속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작곡, 작사가들의 고뇌를 느낀다. 브라이언 휴스턴 목사가 세운 이 교회는 목사의 설교보다 그 교회 음악부에서 소개하는 자신들의 찬송가가 전 세계에 더 퍼져있다.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장남 요엘 휴스턴의 허스키 보이스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조용히 사로잡는다.
이들의 음악을 좋아 하다 보니, 새 음반이 나오면 DVD를 사서 비디오로 본다. 어느 날 공연 비디오를 보던 중 요엘이 기타 반주를 하다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데 팔 안쪽의 문신이 보였다. 마치 단발령 직후 받은 충격이랄까?
소속된 교회의 교세가 기울어져, 타 교회와 합하게 되었다. 새로 부임한 목사의 반소매 셔츠 바로 안쪽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또 한 목사의 팔엔, 아예 길게 히브리 원어로 된 문신이 있었는데, 장인이 어느 신학교의 학장이란다.
여름이라 짧은 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하는 몇 여성들의 등, 팔엔 애교라고 할까, 전도지라고 할까 헷갈리는 문신을 본다. 등 가운데 하트 모양의 문신 속에 십자가가 새겨있어 혼동을 일으킨다.
애리조나의 스콧츠데일에 소재한 트리니티 교회의 마크 드리스콜 목사는 자신의 가족들은 문신을 하지 않았지만 반대하지 않는다며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전했다. 레위기 19장 26-30절을 인용하며 문신에 대해 성경은 딱 한번 언급하고 있다. 즉,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이다. 긴 설명 후에 성경 어디에도 문신을 금지하는 표현은 없다고 전하며, 문신 자체보다는 문신 속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어느 한인교회의 집사에게 문신에 관해 질문했더니, 단호하게 그런 목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구원 받기 전에 새겨진 문신이라도 거부하겠다고 했다. 그럼 목회자 청빙할 땐 옷을 벗어보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단발령에 맞게 맞춰나갈 것인가? 동성연애자에 관해 일어난 교회의 분란에 이어, 문신에 관해서도 교회가 나갈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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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손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