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례식장 풍경

2018-07-28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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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일시에 세상이 흐린 화면으로 바뀌었다”는 시(문정희, ‘기억’)가 생각난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세상이 갑자기 벅적벅적한 느낌이다. 세상의 구석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던 사람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한마디씩 하는 느낌이다. 때로는 입을 열어 때로는 입을 다물고, 사람들은 하고 싶던 말들을 하고 있다. “일시에 세상이 빛나는 화면으로 바뀐” 느낌이다. 슬픔으로 아픔으로, 세상이 선명해졌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자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도망친 데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청렴, 정의 내세우면서 뒤로는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비아냥도 있다. 그는 “4천만 원을 받았다”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를 벌했다.

서울은 폭염의 나날이었다. 가만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는 무더위를 뚫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푹푹 찌는 열기 속에 먼 길을 마다않고, 지하철 버스 갈아타며 불평 한마디 없이 모여들었다.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서면 다시 또 긴 기다림. 장례식장 입구에서부터 빈소가 있는 지하 2층까지 조문객의 줄이 층을 오르내리며 굽이굽이 이어졌고, 그곳에서 모두는 평등했다. 얼굴 알려진 고위층도, 얼굴 없는 일반서민도 한발 한발 앞 사람을 따라 움직이며 숙연하게 조문 순서를 기다렸다.


아마도 그는 그런 사회를 꿈꾸었을 것이었다. 이 땅에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렇게 한발 한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이 가는 나라. 지난 2010년 서울 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 그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말했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꿈은 꿈, 현실은 현실이다. 그의 꿈이 현실로 가능해질 만큼 현실의 높은 장벽을 허물어 세상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은 멀고도 험난하고, 그 자신 정치자금이라는 현실에 발목이 잡혔다. 돈 없는 이들을 위해 정치를 하려해도 돈은 필요하고, 없는 자들을 대변하는 군소정당 정치인을 가진 자들은 지원하지 않는다.

2016년 총선 직전 돈 들어갈 데는 많고, 필시 돈은 바닥난 어느 시점에 그는 현실과 타협을 했다. 4천만원의 타협이었다. 4천만원 불법의 수치를 그는 이겨내지 못했다. 가치로써 존재이유를 찾는 진보 정치인으로서 정도의 가치를 저버린 수치심은 컸을 것이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해서” “너무 사람이 맑아서” “거대 권력과의 싸움에선 그렇게도 당당했으면서” “작은 티 때문에 생명까지 접다니” … 시민들은 아파했다.

정치인 노회찬을 모두가 지지할 수는 없다. 이념이 다를 수도 있고, 이해가 다를 수도 있으며, 인간으로서 그에게 흠도 있을 것이다. 한가지, 그를 대부분의 다른 정치인들과 분명하게 구분 짓는 것은 그의 시선이다. 그의 눈길이 가서 닿는 곳이다.

서울에 6411번 버스가 있다고 한다. 빈촌인 구로구에서 출발해 부촌, 강남을 거쳐 개포동까지 가는 버스이다.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면서 그는 6411번 버스의 첫차 손님들 이야기를 했다. 새벽 4시의 첫차와 5분 후 출발하는 두 번째 차에는 매일 같은 사람들이 타서 모두가 서로를 아는 특이한 버스라고 했다. 손님들은 50~60대 아주머니들. 5시30분까지 강남의 각 빌딩에 출근해 청소를 맡아하는 미화원들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스며들 듯 건물에 들어와 눈에 띄지 않는 곳들을 돌며 쓸고 닦는 그들은 그 빌딩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름은 있으되 이름 없이 그냥 아주머니로 불리는 그들, 아무도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그들을 그는 투명인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실제로 돌아가게 하고 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수많은 힘없는 자들, 소외된 자들, 그 모든 투명인간들을 위해 정당은 존재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었다.

그로부터 6년 후 그의 장례식장은 투명인간들의 잔치였다. 사회적 약자들이 줄줄이 모여들었다. 힘없어 아픔 겪은 자들이 찾아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고,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와 가족들이 오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먼 길을 달려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고, ‘항상 노동자 편에 섰던’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왔다.

이제 수만의 추모 인파를 뒤로 하고 그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누웠다. 그곳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한국 정치인들의 시선이 좀 바뀌기를, 수치스러운 것을 수치로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 주변의 투명인간들을 보는 밝은 눈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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