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억울하면 자살을 선택했을까.’ ‘끝내 자살한 것을 보면 잘못한 것은 사실인가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 마을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러자 그 의미의 해석을 둘러싸고 당시 시중의 의견은 이 같이 크게 둘로 나뉘었었다.
자살은 동양에서는 결백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보통 속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동서양 차이보다 문화권마다의 사회적 인식, 가치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리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스스로 곡기(穀氣)를 끊는다’-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한국의 관용어다. 구차한 삶을 사느니 스스로 식음을 끊고 죽음을 택한다는 의미다. 결코 자살을 미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명예로운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고대 로마에서 자살은 남자다운 삶의 마감으로 오히려 존중을 받았다. 남에게 폐만 될 뿐이다. 그럴 경우 한국식 표현대로 스스로 곡기를 끊는 것이 더 남자다운 죽음으로 인식됐다.
자살은 계급적 전통과 귀족 문화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에 따라 사회적 수용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동체 문화가 발달한 집단적인 사회, 그리고 계급제적 전통이 강해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로 존중돼온 사회에서는 자살이 쉽게 수긍된다. 이에 반해,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지극히 비경제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또 다시 한 명의 정치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노회찬 정의당 대표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노 의원은 삼성의 떡값을 받은 검사 명단을 공개해 통신 비밀보호 위반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등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정치적 비리와 싸워온 진보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드루킹으로부터 4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고 목숨을 스스로 끊은 것이다.
그러니까 속죄의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어찌됐든 비리와 관련돼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선택, 특히 자살을 옹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밝힌 대로 불과 4000만원이다. 그런데 그게 부끄러워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뭐랄까. 지나치게 순수하다고 할까. 그래서 더 안타깝다. 수 십, 수 백 억 원의 비리를 저지르고도 내로라 활보하는 정치인이 한둘이 아닌 것이 한국의 정치판이다.
노 의원의 선택과 관련해 문득 일군(一群)의 사람들이 떠올려진다. 이른바 ‘박근혜의 사람들’이다. 한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들 중 구차하게 연명을 하느니 스스로 곡기를 끊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당시 여권의 정치적 대부 위치의 사람들이 타오르는 촛불 앞에 책임을 통감하고 공개적으로 진심을 다해 사과했더라면 어떤 상황이 왔을까. 적어도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또 감옥에 가는 치욕은 혹시 막지 않았을까…
새삼 정치무상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