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길어지고 있는 미국의 역사

2018-07-21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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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사회는 인종차별을 선두로, 이민, 난민, 낙태, 동성애, 의료보험, 총기소유, 소득양극화 등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둘러싸고, 보수 진보 양측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다.

수많은 논쟁 중에서 가장 치열하고 해결 가능성이 멀어 보이는 이슈는 이민문제와 인종차별이다. 이 두 문제는 별개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동전의 양면처럼 본질적으로 한 개의 문제에서 파생된 두가지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수주 동안 매일 톱뉴스 자리를 차지했던 난민들의 가족분리 정책도 결국 이 두 가지 문제가 얽혀서 생긴 것이다.

과거 300여 년 동안 미국으로 온 이민, 난민의 압도적 다수가 유럽계 백인들이었다. 이들은 텅 빈 대륙에 와서 토착 인디안 부족들을 정복하고, 추방하고 때로는 학살하는 잔인한 정책을 실시해서 미 대륙을 점령했다. 떠나온 고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한 영토를 피땀 흘려서 개척하고 건설해서 세계 일등의 부국, 강국을 건설했으니, 이쯤 되면 미국의 진짜 주인이 인디언인지, 유럽 백인인지의 논쟁이 나올 법하다.


북미 대륙을 향한 합법, 불법 이민행렬은 21세기 현재에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건국 전후 수백년 동안 미국으로 들어온 이민들이 유럽계의 백인들이었던 것에 비해 최근 50여년 동안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출신의 이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들과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고 경계한다. 백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국경을 넘어오는 불법난민들은 “우리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이며, 이 이질적인 사람들의 불법 유입은 백인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난민가족을 분리 수용하는 정책은 바로 이 위기감에서 나온 배타적 정책의 산물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구호 속에는 “미국을 다시 하얗게”라는 뜻이 내포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만약 노르웨이 출신 백인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기네 나라를 떠나 미국국경으로 몰려든다면, 과연 불법이민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입국을 금지할까 하는 의문을 품어볼만하다.

난민가족 분리수용이라는 정책을 놓고 한쪽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법이민 ‘무관용 정책’ 을 고집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부모와 어린 자녀들을 강제로 떼어놓는 잔인한 정책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양심시위가 전국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반대 여론에 못 이겨, 분리된 가족을 다시 합치게 하겠다는 임시방침을 내세웠으나, 단시일 내에 제대로 실현될지도 확실치 않고, 이미 정신적 충격을 입은 어린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거론하는 지도자도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빈곤과 부패에 찌든 나라 사람들에게 미국은 아직 ‘지상낙원’이기 때문에 자기 나라의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목숨 걸고 국경을 넘으려는 행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아무리 불법난민에 대한 강경책을 쓴다 해도, 난민 문제가 쉽게는 해결되기 어려운 배경이다.

“역사가 없는 나라는 행복한 나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대로라면 지금부터 242년 전 1776년 7월 4일 미국은 아주 행복한 나라였다. 요즈음 미국의 역사가 길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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