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2018-07-21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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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푹푹 찌는 나날. 날씨 못지않게 뉴스들도 갑갑한데 며칠 전 반짝 싱그러운 뉴스가 있었다. 한국의 전직 대법관이 시골 작은 법원 판사직에 지원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1월 퇴임한 박보영(57) 전 대법관이 신선한 파격의 주인공이다.

한국에서 대법관들의 행로는 대략 정해져있다. 임기 6년 마치고 나면 대개 돈방석에 올라앉는다. 전관예우 덕분이다. 변호사로 개업하든 대형로펌에 들어가든 수억 버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로 일하며 5개월간 16억원 번 사실이 알려져 국무총리 후보에서 밀려났던 것이 한 예이다.

박 전 대법관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나이 들면 고향에 내려가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꿈이 있었던 걸까? 전남 순천 태생인 그는 인근 여수시법원 판사 임용신청을 했다. 필시 결단이 필요했을 그의 선택은 인생 후반부를 좀 다르게 사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창의적 나이 듦(Creative Aging)’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최승자 시인의 ‘삼십세’는 시작된다. 서른은 청춘이 막 내리는 시점. 장밋빛 꿈과 낭만, 열정에 휩싸여 세상은 자유롭고 방황은 아름답던 20대가 끝나고, 현실이라는 행성에 추락/정착하는 나이이다. 만만해 보이던 세상은 얼마나 강고한 철옹성인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은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 현실 앞에 주눅 들고 백기 들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그래서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 /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 ” 으로 시는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에 길들여지면서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잊고, 서른의 서러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며 노년을 맞는다. 그리고 노년의 문 앞에 서면 다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막막함을 마주한다. 젊은 날처럼, 이루지 못할 꿈이나 포기해야 할 이상 때문이 아니다. 밥벌이라는 현실에 너무 오래 묶여 살다보니 판에 박은 삶 외에는 살줄을 모르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현재 65세의 기대수명은 남성 84.3세, 여성은 86.7세이다. 이는 평균이고 4명 중 한명은 90세, 10명 중 한명은 95세를 넘을 것으로 사회보장국은 보고 있다. 은퇴하고도 근 30년, 망망대해 같은 시간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는 개개인의 문제이자 국가적 문제이다. 노년의 삶의 질은 심신의 건강과 직결되고 국가의료보험 지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받는 것이 ‘창의적 나이 듦’이다. 노년의 근본적 문제는 지루함. 설렘, 들뜸, 흥분, 몰입, 열정, 호기심 같은 생동감 없이 착 가라앉은 삶이다. 뭔가 신나고 보람 있고 성취감 느낄 일이 있으면 노년의 삶의 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PBS에서 ‘아직도 꿈꾸며(Still Dreaming)‘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뉴저지의 한 양로원 노인들이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6주간 연습해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기록했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병 등 지병을 앓고 있는 70대 노인들이 힘겹게 연습을 해나가는 동안 문득 젊은 날의 꿈이 되살아나고, 생기가 돌며, 나중에는 양로원 전체에 활기가 넘치는 변화가 왔다. 창조적 활동이 노년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꼽히고 있다.

‘창의적 나이 듦’이 반드시 시를 쓰고 노래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 활동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붕어빵 같은 나날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대신 의지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뭔가를 모색하는 자세가 핵심이다. 젊은 시절 꿈꾸던 어떤 일 혹은 단순히 새로운 일에 몰입하면서 나이 들어 굳어진 가슴이 뛰기 시작하면 성공이다.


창의성은 삶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나면서도 창의적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지난달 말 조지아에서는 ‘백팩 장례식’이 열렸다. 지역 초등학교에서 25년 근무한 태미 워델(58) 교사의 장례식이었다.

지난해 8월 대장암이 재발하면서 퇴직한 그는 천생 선생님이었다.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을 생각했다. 그는 아들에게 당부했다. “장례식 화환은 사양해라. 대신 조문객들이 학용품 가득 채운 백팩을 기부해주면 고맙겠다.”

장례식 날 그의 친지, 동료, 이웃들은 모두 백팩을 들고 모여들었다. 그날 들어온 백팩이 130개, 이어 SNS로 ‘백팩 장례식’의 감동이 전해지면서 백팩은 계속 밀려들었다. 한 비영리단체는 워델의 이름으로 수천달러어치 학용품 기부를 약속했다. 평범한 사람도 이렇게 의미 있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주었다.

‘이 세상 소풍’을 귀하게 여겨야 하겠다. 대책 없이 허비하기에 노년의 날들은 너무 아깝다. 밥벌이의 사슬이 헐거워져 마침내 자유로운 이때가 다시 꿈을 꿀 때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더 이상 할 수 없는 날이 도둑같이 찾아들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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