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을 돕는 마음

2018-07-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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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덕양보(陰德陽報)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음덕’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선행. 행여 남이 알새라 조용히 덕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양보’는 남이 다 알도록 받는 보답. 남몰래 덕을 베풀고 나면 남이 다 알도록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 ‘음덕양보’이다.

전한시대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에는 남을 돕는 세 가지 덕이 나온다. 앞에서 말한 음덕과 심덕((心德) 그리고 공덕(功德)이다. 심덕은 어려운 이웃을 동정하며 돕고 싶어 하는 마음, 공덕은 자신이 가진 권력과 재물로 남을 돕는 것을 말한다.

공덕을 아무도 모르게 베풀어 음덕까지 행하면 최선이겠지만 권력이나 재물 가진 사람들이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베풀다 보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보통이다.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태국 동굴 소년들 구출작전 와중에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 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 X의 최고경영자인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이다.

이달 초 태국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 12명과 20대 코치가 동굴 속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구조에 힘을 보태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 들었다. 구조할 의무가 있는 것도,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생업까지 접고 달려온 사람들이 있고 보면 이들은 음덕의 주인공들이라 할 만하다.

사건의 발단은 폭우였다. 지난달 23일 축구훈련을 마치고 동굴 구경에 나섰던 이들은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동굴이 물에 잠기면서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

밀려드는 물을 피해 안으로 안으로 도망가다 보니 이들이 피신해 있던 곳은 동굴 입구로부터 5Km나 떨어진 곳. 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것도 사고발생 열흘이나 지나서였다. 물에 잠긴 좁고 긴 동굴 길을 헤치고 이들을 구출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세계가 숨죽이고 이들의 구조 가능성을 지켜보고 있던 지난 6일 이들에게 산소탱크를 전달하고 돌아오던 전직 해군 특수부대 요원이 산소 부족으로 숨지면서 세계적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때 머스크가 끼어들었다. 태국의 동굴로 어린이용 소형 잠수함과 구조팀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스페이스 X 엔지니어들에게 지시해 소형 잠수함을 제작하게 한 후 이를 가지고 현장에 갔다.

말하자면 공덕을 베풀겠다는 것이었는데, 그를 보는 시선들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선행 보다는 매스컴 타려는 속셈 아니냐는 의혹들이 쏟아졌다. 스페이스 X의 길이 2m 원통형 잠수함은 좁고 구불구불한 동굴 안 현장에 전혀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왔다.

머스크의 이런 행동을 ‘홍보용’이라고 대놓고 비판한 사람도 있었다. 현장을 지휘하던 영국인 다이버 번 언스워스였다. 태국에 살고 있는 그는 사고소식을 들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태국 네이비 실과 함께 구조작업을 펼쳤다.

그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비판한 내용을 들은 머스크는 발끈했다. 그런데 좀 과했다. ‘언스워스는 소아성애자’라고 트윗을 날린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자 그는 곧 트윗을 삭제했지만 언스워스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태세다.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공표했다.

머스크가 한동안 구설수에 휘말릴 것 같다. 그가 정말로 도울 마음이 있었다면 조용히 지원할 걸 그랬다. 음덕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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