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를 세번째 읽었다. 읽을 때 마다 새로운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동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위험한 함정을, 이 책을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소의 질책을 보내는 ‘어린 왕자’만큼 미묘하고도 아름다운 시도 없을 것이다. 사실 ‘어린 왕자’를 처음 읽었을 당시, 이 책은 솔직히 재미도 없었고 생각의 전환이랄까 상상력을 가져야한다는 따위의 (교육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는 것만 같아 딱히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러한 풍조가 이미 만연되어 있었다. 그나마 이 책이 읽혀지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세월이 지난 뒤 ‘삶이란 무엇인가’ 그런 체험적 성찰을 거듭한 뒤였다.
‘어린 왕자’는 무엇보다도, 지구에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사고해야하며 또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야하는가 하는 가치관 정도는 정립하고 살아야한다는 도전을 안겨준다. 특히 저자처럼 극단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생떽쥐베리는 조종사였음) , 처절한 고립,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들… 구도라든가 아무튼 이런저런까닭으로 자기 세계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삶의 방향이나 나침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등의 문장이라든가 특히 ‘내가 죽은 것 처럼 보일 거야, 하지만 그게 아냐’ 하며 죽어가는 어린 왕자의 모습 등은 생사를 초탈한, 어떤 감동을 주기도 한다.
‘어린 왕자’의 주제는 이 세상에 본래적인 절대적인 그 무엇이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존재란 다름아닌 길들여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세상과 친해지는 동안만 삶과 그것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우주)에 대해서 의미를 가질 뿐 이 세상에 절대적이고 본래적인 나(我)란 없다는 것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각자란 그저 하나의 별을 선택하여 서로 친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일뿐 그것에 잠시 길들여졌다고 해서 자기 것이 아니요 육신의 옷을 벗어버렸다고해서 또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은 오히려 이러한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일뿐 죽음을 초월하여 사는, 그러한 열정이 없는 삶이 어쩌면 죽음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다소 딱딱한 철학 이야기같지만 아무튼 이것이 바로 성서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어린 왕자’의 주제였고 이 ‘어린 왕자’ 로 인해 평범한 소설가였던 생떽쥐베리는 문학의 별이 되었다. 이 동화같은 이야기는 너무도 진지하고 심오하며 때로는 슬프기도하여 쉽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러나 너무도 깊은 삶의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구도하는 심정으로 몇자 짚어 보면, B612라는 작은 혹성에 살고 있는 어린 왕자는 어느 날 자기 별에 찾아든 장미에게 감정(사랑)을 느끼게 돤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장미의 사랑을 깨닫기에는 너무 어렸고 장미는 모순덩어리였다. 꽃 때문에 불행하게 된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장미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여행을 결심한다. 여행 중 어린 왕자는 수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특히 지구에 도착하여 꽃들과 여우로부터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 친해진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나의 장미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자신에게 유일하게 길들여진, 그 장미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뱀의 힘을 빌어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되는데, 쓰러진 왕자를 안고 슬퍼하는 생떽쥐베리에게 왕자는 자신은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무거운 육신을 벗는 것이라며, 모든 길들인 것에는 책임이 있다는 말과 함께 지구를 떠난다.
밤하늘의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발견하게 되곤한다. 별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하나의 자아, 바로 별이다. ‘어린 왕자’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은 인간에게는 그런 영속적인 모습, 바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겠지만, 만약 당신이 사막 한가운데서 별을 바라보게 된다면 다음의 생떽쥐베리의 말을 기억하시라.
- 어느 날 아프라카의 사막을 여행하실 때 당신이 그곳을 지나게 되거든 제발 발 걸음을 서두르지 마오. 별 아래 잠시 기다려 주오! 그리고 한 아이가 당신에게 온다면… 그 땐 친절한 마음을 가져주오! 그리고 날 슬프게 버려두지 마오. 나에게 곧 편지를 보내주오. 그가 돌아왔노라고 - 생떽쥐베리는 ‘어린 왕자’를 출간한 지 1년 뒤(1944년) 그의 염원대로 비행 중 영원히 어린 왕자에게로 돌아갔다. 향년 4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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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