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주에 도착한 예멘 난민

2018-07-07 (토)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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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것은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인간의 본능이다. ‘그들’을 경계함으로써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가 살기 위해 ‘그들’을 공격한다. 낯선 ‘그들’을 ‘우리’로 편입시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조건들이 따른다. 우선 필요한 것은 익숙함. 인종, 언어, 종교, 문화가 다르지만 자주 대하다 보면 ‘저들은 저렇구나’ 익숙해진다. 익숙함을 토대로 이해와 관용의 문이 열린다.

예멘이라는 생소한 나라 사람들이 제주도로 밀려들면서 한국이 발칵 뒤집혔다. 지난 3월부터 제주도에는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들어와 난민신청을 했다. 한국은 1992년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13년부터 난민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수백명이 한꺼번에 한곳으로 몰리기는 처음이어서 정서적 충격의 파장이 크다.

난민이 계속 밀려들면 일자리 문제, 치안 문제로 ‘우리 삶의 터전이 다 무너진다’ 는 불안과 두려움이 지레 증폭되면서 ‘난민 반대’ 청와대 청원에 50만 명이 서명했다. 먼 나라 일로만 여겼던 난민사태가 갑자기 ‘우리 일’로 닥치자 준비 없던 한국사회는 너무 놀란 것 같다. 일종의 경기(驚氣) 수준이다.


악성루머와 함께 여론이 들끓자 한국정부는 우선 출도금지 조치로 예멘인들을 제주도 안에 가두고, 제주도 무비자입국 허가 대상에서 예멘 국적자를 제외했다. 사회일각의 격한 감정들을 일단 가라앉히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국가차원에서 해결해야할 난민문제를 제주에 떠넘긴 형국이 되고 말았다.

한편 법무부 통계를 보면 올해 연초부터 5월말까지 한국에서 난민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은 7,737명이다. 제주도의 500여 예멘인들을 난민문제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한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난민문제는 이미 한반도에 상륙해 있었다.

난민은 어떤 사람들일까?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 씨의 답은 간단하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가 내전에 휩싸여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되면서 살 길 찾아 헤매다 보면 난민이 되는 것이다. 멀리 아프리카 사람들이 브라질을 거쳐 북상해 미국국경에 다다르고, 시리아 국민들이 터키를 거쳐 그리스 해변에 몰려드는 일들은 모두 절박함의 산물이다. 식구들과 안전하게 살 곳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상의 모든 길을 뚫고라도 가겠다는 생존본능이다.

시리아 난민문제는 2015년 9월 에게해 외진 해변에서 3 살배기 어린 소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내전을 피해 에게해 건너 그리스로 가려던 시리아 가족 4명 중 3명이 익사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시리아의 비극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을 때, 또 하나의 비극이 옆에서 진행 중이었다. 2015년 봄부터 예멘 내전이 시작되었다.

아랍 내 최빈국인 예멘은 지난 3년여의 내전으로 완전 초토화했다. 사회 경제적 기반이 모두 파괴되고, 그 사이 전염병까지 돌면서 사상 최악의 비극을 맞고 있다. 유혈사태로 1만 여명이 죽고, 콜레라로 2,000명이 죽었으며, 부상과 배고픔 등 고통은 산자의 몫으로 남았다. 인구 2,500만 명 중 700만 명이 아사 직전이고, 그중 거의 절반은 어린이들이다. 영양실조 아이들의 사진은 참혹해서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내전의 발단은 ‘아랍의 봄’이었다. 2010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2011년 연말 예멘으로 이어지고 이듬해 2월, 34년 철권 통치하던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이 밀려났다. 이어 과도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장기독재로 마비된 정치 군사체제와 깊고 깊은 빈곤의 늪을 뚫을 수는 없었다.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살레와 손잡고 정부에 대항하면서 내전이 시작되고, 여기에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하고, 알카에다와 IS까지 끼어들면서 전쟁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에 도착한 예멘인들은 대부분 젊은 남성들이다. 내전 와중에 청년들은 눈에 띄었다 하면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군인으로 끌려가니 탈출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유럽도, 미국도, 사우디도 난민을 받지 않으니 같은 이슬람국인 말레이시아로 몰렸다.

그곳에서 제주의 무비자 입국허용 사실을 듣고 몇 명씩 제주로 향하다 최근 갑자기 늘어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쿠알라룸푸르 - 제주 직행 저가 항공노선이 생긴 것이다. 제주에 도착하면 서울로 가서 난민보호 신청을 하고 정착할 수 있으라는 희망에 그들은 부풀었었다.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이 도덕적 딜레마에 빠졌다. 무작정 수용할 수는 없지만. ‘그들’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거두었으면 한다. 제주의 난민구호단체가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임시 취업을 알선하며, 가슴 따뜻한 시민들이 임시숙소를 제공한다는 소식은 반갑다. ‘그들’을 품어 ‘우리’로 만들 수 있다면 장차 그것이 한국의 국력이 될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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