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펠레처럼 차라

2018-07-06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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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처럼 차라
월드컵 열기가 요즘 LA날씨처럼 화끈하다. 한국은 비록 16강에는 못 들었지만 2014년 월드컵 챔피언인 독일과의 대결에서 강한 투혼을 보여주면서 승리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뮐러와 메시 그리고 호날두 같은 수퍼스타들이 경기에서 져 일찌감치 짐을 싸들고 귀국하는 바람에 월드컵의 스타파워도 크게 쇠약해진 분위기다. 그래도 월드컵만큼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경기는 없다.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는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브라질에 세 차례나 월드컵 챔피언십을 안겨준 펠레(77)를 꼽는다. 이런 펠레가 스크린에 나와 필드에서 공을 차면서 배우노릇을 한 영화가 ‘빅토리’(Victory·1981·사진)다. 이 영화는 2차대전 때 독일군에 포로가 된 연합군의 전직 축구선수들과 독일 대표팀과의 한판 승부를 다룬 ‘축구전쟁’ 영화다. 스포츠란 궁극적으로 극적 요소들인 인간관계와 상대방과의 대결 그리고 승패가 있는 것이어서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빅토리’도 이런 요소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실베스터 스탤론, 마이클 케인, 맥스 본 시도 등 빅스타들과 함께 펠레를 비롯해 바비 모어(영국)와 오스발도 아딜레스(아르헨티나) 및 파울 반 힘스트(벨기에) 같은 축구 수퍼스타들이 나오는 멜로드라마다.


1943년. 독일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새로 부임한 소장(본 시도)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영국의 스타 축구선수 출신인 포로 존 콜비(케인)에게 독일팀과의 경기를 제의한다.

이에 콜비는 다국적 전직 축구선수들로 포로팀을 구성한다. 펠레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시민이고 스탤론은 로버트 해치라는 이름의 축구 문외한인 캐나다군인으로 나온다. 한편 연합군사령부는 이 경기를 이용해 포로선수들을 탈출시킬 계획을 짠다.

파리의 콜롱브경기장.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역사적인 적간의 올스타 게임이 벌어지고 심판의 편파 판정 속에 독일팀이 전반전을 4대1로 리드한다. 그리고 하프타임을 이용해 탈출하기로 했던 포로선수들은 자유를 포기하고 후반전에 돌입,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

이 승리에 일등공신 노릇을 하는 선수가 바나나킥을 구사하는 펠레. 축구와는 거리가 먼 해치는 짧은 연습을 거쳐 골키퍼를 맡아 독일팀의 페널티킥을 방어하면서 맹활약하는데 그런 신기는 스탤론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교향곡과 함께 빌 콘티(‘록키’의 음악 작곡)의 사람 흥분시키는 음악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20분간의 축구경기를 빼면 명장 휴스턴의 영화로선 타작수준이다.

펠레에 관한 또 다른 영화로는 ‘펠레:전설의 탄생’(Pele:Birth of a Legend·2016)이 있다. 펠레의 소년시절과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와 펠레의 관계를 다룬 것인데 상투적이요 단순하고 깊이가 모자라는 졸작이다.

경기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축구영화가 ‘오프사이드’(Offside·2006)다. 2030년까지 작품 활동과 출국이 금지된 이란의 반체제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만든 베를린영화제 은곰수상작. 2006년 월드컵 출전권을 놓고 이란과 바레인이 격돌하는 경기를 보고파 안달이 난 소녀의 드라마인데 문제는 여자의 축구경기장 입장을 금지한 이란의 법.

그래서 소녀는 남장을 하고 입장을 했다가 들켜 역시 경기장에 숨어들었다가 적발된 몇 명의 여성팬들과 함께 경기장의 임시구치소에 수용된다. 이들을 지키는 군인이 경기를 보면서 그 내용을 여자들에게 중계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축구를 빌려다 이란의 여성차별을 비판한 작품이어서 국내 상영이 금지됐다.

제목에 베캄이라는 자기 이름이나오는데도 막상 본인은 뛰지 않는 축구영화가 ‘베캄처럼 차라’(Bend It Like Beckham·2002)다. 런던지역에 사는 보수적인 부모 때문에 부모 몰래 지역팀에서 뛰는 인도계소녀와 그를 격려하고 돕는 영국소녀(키라 나이틀리)의 우정과 강슛을 잘 섞은 영화다. 베캄은 영화 끝에 부인 빅토리아와 함께 잠깐 나온다.

한국 사람이라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가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이 만든 기록영화 ‘그들 생애의 경기’(The Game of Their Lives·2002)다.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경기에서 북한의 천리마 축구단이 강호 이탈리아를 1대0으로 제압하고 8강에 올랐던 사실을 담았다.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길 확률은 1,000대 1이어서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충격적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2022년 11월부터 12월에 걸쳐 카타르에서 열리는 다음 월드컵경기에서는 한국과 북한이 한 팀이 되어 뛰는 것을 보고 싶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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