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담론(談論)의 예의

2018-07-04 (수)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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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談論)의 예의

문일룡 변호사

얼마 전 버지니아 주 렉싱턴의 한 식당에서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공보비서가 쫓겨 난 사건 때문에 요즈음 미국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샌더스가 음식 주문한 것을 알게 된 주방 요리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그를 내 보내 달라고 식당 주인에게 요구했다. 그러한 뜻을 식당 주인이 샌더스에게 전하자 샌더스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떠났다.

이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고, 편을 갈라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맥신 워터스 연방하원의원부터 시작해 트럼프 대통령까지 가세한 논쟁의 중심에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결론적으로 얘기해 그 식당의 처사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들 중 반대하는 것이 많다. 교육뿐 아니라, 세금, 의료, 이민, 무역, 환경, 외교 등, 사실 어디 한 군데 예외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샌더스 공보비서가 그 식당에서 그렇게 쫓겨 난 것은 옳지 않다.


공보비서란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는 직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샌더스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오고 있다. 사실 존경심이 들 정도이다. 그는 악역을 맡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대통령의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논리를 전개한다. 수시로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해대며 충분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대통령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혹자는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고, 언제라도 그만둘 자유가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거나 비인간적인 대통령의 정책을 옹호할 경우 대통령이 받아야 할 비난이나 항의를 대신 받아도 불평할 수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보비서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하는 발언 내용 자체에 대한 비난은 대통령에게 가야 할 몫이다.

식당이란 누구든지 와서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하는 곳이다. 만약에 샌더스의 경우처럼 고객의 정부정책에 대한 견해에 따라 선별해 음식 주문을 거부하는 식당 주인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어쩌면 식당에 따라 민주, 공화 양당 지지자들이 따로 갈 수 있는 곳으로 나뉘어져도 불평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는 고객이 누구인지에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상대에 따라 선별한다면 그 비즈니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콜로라도 주의 한 베이커리가 동성애자의 결혼 케이크 주문을 거부한 것도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 비즈니스 오너가 주관적 판단으로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하면, 비즈니스 오너가 고객이 유색인종이기에 서비스를 거부한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교육위원으로 일하면서 내가 취하는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비난도 듣는다. 그러나 그 것은 내가 선출직 공직자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도를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사안을 놓고 냉철한 논리 논쟁이 아니라 감정에 휩싸인 야유와 조롱으로 이어질 때 그 어느 담론으로부터도 건설적인 결론이 도출되기 어렵다.

어떤 담론에도 지켜져야 할 예의가 있다. 현재 미국의 분위기는 이러한 예의를 종종 벗어나고 있다. 이는 어떤 한 정파만의 책임이 아니다. 상대가 그런다고 똑같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미 국민의 의식 수준이 전 세계에서 최고의 모범이 되기를 기대하진 않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들로부터 조소의 대상은 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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