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리여 안녕!

2018-06-30 (토) 김옥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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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중에 메리라는 여자가 있었다. 벌써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오월 중순, 병원 앞 꽃밭은 온통 분홍빛 장미로 뒤덮여서 그 화사한 아름다움에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던 그날, 그녀는 영영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어느 날 부터인지 슬슬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기운이 없어하던 그때부터 그녀의 병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처음엔 자신의 폐에 문제가 생겼나보다 하고 계속 폐 계통의 의사만 찾아다녔지만 의외로 병은 신장에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아왔지만 당뇨병 환자들이 거의가 그렇듯 별로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고 비교적 그 병을 잘 다스려왔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차 결국 병은 신장암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직계 가족 사십여 명 중에 의사만 열 명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도, 남편도 또 동생들이며 조카들까지 모두다 의사지만 아이러닉하게 그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불가사의한가보다.


그녀의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작고하셨고, 남편은 작년에 이 세상을 떠났는데 갑자기 그녀도 그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 전쟁이후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녀의 가족은 처음으로 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케이스라고 했다.

그 당시 한국은 전쟁 이후 모든 국민이 가난으로 살기가 힘든 시절이어서 미국 유학이나 가족 이민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음악 박사와 사회학 박사가 두개나 있었지만 한 번도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곳 라스모어 말고도 산타 마리아란 곳에 집이 있고 그곳에서 수십 년을 의사인 남편과 산, 모든 면에서 아쉬울 게 하나도 없던 여자였다.

왜 우리 몇 명의 친구들이 그녀를 못 잊는가 하면 그녀는 늘 남에게 베풀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면 우리는 아침 운동을 함께 했다. 그녀는 운동이 끝나면 아침밥도 사주고 또 점심때도 불러서 자신의 집에서 늘 우리를 위해 밥과 요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또 농경지인 산타 마리아에서 브로컬리나 온갖 채소들을 뜯어 와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제일 오래 살았으면서도 제일 한국적이었다.

그녀가 죽은 후 나는 깨달은 것이 있다. 두 가지의 친구가 있는데 한 사람은 베푸는 친구고 다른 한쪽은 늘 받기만 하는 친구다. 내 주위를 돌아볼 때 내게는 그녀가 유일하게 내게 베푸는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여러 명의 친구가 모두 서로 주고받는 사이라곤 하지만 그녀는 마음뿐 아니라 물질로도 늘 베풀기를 좋아하던 친구다.

가령 그녀가 입은 옷이 예쁘다고 말해주면 그 자리에서 그 옷을 벗어 입으라고 주던 친구다. 그녀의 장례식날 내가 추도사를 읽었을 때, 모두가 숙연했고, 남동생 둘이서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누나지만 꼭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슬하의 네 딸들을 모두 변호사로, 금융기관에서 거액을 주무르는 그런 자식들로 키워냈다.

무엇보다 그녀는 몇 십 년 전에 교회를 만들었고 그 교회를 키우며 하나님께 헌신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교회에 관해 내게 많은 충고를 주던 사람이었다. 나도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었는데 그녀의 충고가 실질적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은 대게 남을 칭찬하기보다 뒤에서 흉을 보길 좋아한다. 남보다 좀 잘난 사람이 있다면 거의 다 질투 때문에 안달이 난다. 이 세상은 의외로 성숙한 사람보다 철들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이곳 라스모어에 이사 와서 참아야 하는 인내를 배웠다.


나는 일생을 팔팔하고 성질이 급한 다혈질로 살았다. 그러나 이제 팔십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세상은 그렇게 못난 사람도, 또 그토록 잘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한 세상을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 틈에 섞여 둥글둥글 살면 되는 것이다.

지금도 아침 운동을 하면서 나는 가끔 뒤를 돌아본다. 혹시 메리가 뒷문을 열고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나타날 것만 같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한 세상을 잘 살다가 갔다. 좋은 아버지와 좋은 남편과 사랑스런 자식들에다 또 돈도 많이 벌어보았고 명예며 이름도 날려보았다. 사람은 죽고 나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늘 주위에 베풀던 사람은 모두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이제 나는 내 마음속에서 메리의 기억을 지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메리여! 잘 가! 당신이 조금 먼저 갔을 뿐 우리도 언젠가는 그 길을 갈 거야! 이왕이면 당신처럼 아름다운 오월에 떠나면 좋겠다. 꽃잎이 흩날리는 그 길을…구름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

<김옥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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