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간 꽃병

2018-06-29 (금) 12:00:00 김유진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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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간 꽃병

김유진 카운슬러

이 세상에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한 번도 상처주지 않은 사람은 있을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상처받은 영혼들로 가득하다. 엄마의 상처 주는 잔소리, 자녀의 매정한 태도,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믿었던 친구의 배신,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 등 수많은 비수들이 우리의 마음을 찌르고 우리는 상처투성이가 된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 뿐이 아니다. 때론 누군가의 사랑이, 배려가, 칭찬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우리를 찌르기도 한다. “너는 참 예쁘구나”라는 칭찬이 누군가에겐 외모 콤플렉스를 자극하여 슬프게 만들고, 실직한 나를 배려해 밥값을 계산한 친구의 배려는 나의 자존심을 긁어 상처가 되기도 한다.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마음을 스쳐 상처를 준다 /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 사랑의 꽃은 말라 죽는다” - 쉴리 프뤼돔의 ‘금간 꽃병’ 중에서
이미 금이 간 꽃병에 예쁘다며 살짝 손을 대었는데 그 꽃병이 깨져 물이 흐르고 꽃이 말라 죽었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이미 금이 가 있던 꽃병의 잘못일까? 아니면 금이 간 줄 모르고 손을 댄 사람의 잘못일까?


우리는 흔히 “상처받았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같은 상황을 두고도 누구는 상처를 받고 다른 누군가는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금간 꽃병처럼 누군가는 이미 마음에 금이 가 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 밥값을 대신 계산해준 친구의 배려는 내가 재정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다면 고마운 일이고, 다음에 내가 친구의 밥값을 계산하면 된다. 우린 때로 진짜 상처받을 일이 아닌 것에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바로 내 마음에 새겨진 이전의 상처 때문에.

상처 받았다고 느껴질 때, 우린 너무 쉽게 타인을 탓하게 된다. 그 상처가 정말 상대의 무례함과 공격의 결과인지, 이미 금이 가 있는 나의 마음 때문인지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 내면의 상처를 모두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부족함과 상처를 들여다보기보다 남을 탓할 때 우리의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는 상처가 너무 커서 나의 아픔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남 탓을 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받는 상처에 늘 남 탓만 한다면 우린 평생을 ‘상처받은 영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금 간 마음은 조금 씩 조금 씩 깨어지고 언젠가는 완전이 금이 가 부서져 버린다는 데 있다.

내 마음의 금이 간 부분을 발견하고 싶다면, 상처받는 순간을 주목하라. 비슷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상처받고 있다면 나의 이전 상처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의 상처를 발견했다면, 누구보다 내가 먼저 그 상처를 이해하고 매만져 줄 필요가 있다.

때론 “내가 이러한 상처 때문에 많이 아팠구나”라는 단순한 위로와 인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만약 그 상처가 너무 크고 버겁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길 권한다.

<김유진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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