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미회담의 통역관들

2018-06-22 (금) 홍성애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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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의 통역관들

홍성애 법정통역관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당사국인 한반도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수천 명의 취재진이 몰린 세계적인 행사였다. 70여 년 간 극한적인 적대상대였던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세심하게 선택한 회담장소, 싱가포르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는 만남이니 얼마나 역사적인 이벤트인가!

회담결과가 완전히 만족할만하진 않다는 게 중론이나 어찌 첫술에 배가 부르랴! 우선 한반도에서 전운이 사라지고 더불어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만으로도 성공적인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번 회담에서 눈여겨 본 부분이 있다. 직업에 따라 바라보는 관심사가 다양할 것이다. 미용사는 머리 스타일을, 의상전문가는 정상들이 입은 옷과 타이 색깔을, 정치가들은 담화내용을 세밀히 살피고 정치평론가들은 그 내용을 분석해 의견을 내놓는다. 나는 직업이 통역관이라 유난히 양쪽 통역관들에 관심이 쏠렸다.


통역사하면, 말하는 그대로 옮기면 되는 단순한 직업이라 생각 할 수 있다.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데 난관이 있다. 우선 화자의 어투에 익숙해져야 한다. 즉 언어의 습관, 독특한 억양, 어순, 화법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무엇보다 문장을 짧게 하고 어휘와 발음이 분명하며 앞뒤의 조리가 정연한 경우는 통역이 용이하다.

반대로 장황하고, 불필요하게 반복하고, 애매한 표현(예를 들면 한국말에서 흔히 쓰는 “---것 같아요” 같은 것들. 이건 긍정인지. 반신반의인지, 확신이 없는 회피적인 말인지, 또는 겸양인지 모호하다)을 쓸 때는 그 어감으로 봐서 통역을 해야 하므로 상당히 애를 먹는다. 그래서 가끔씩 오역을 했다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번 생중계로 싱가포르 회담을 지켜보면서, 미국 측 통역관 이연향과 북한 측의 김주성이 양쪽에 밀착해서 통역하는 걸 보면서 그들의 스트레스가 어떨지 실감이 갔다. 단어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고 의사전달이 정확히 되려면 찰나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단어가 속속 튀어나와야 하고 단어선택이 정확해야 함은 물론 전체 흐름에 유의해야 한다. 어떤 땐 함축된 의미까지 전해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 정상의 발언이 우선시 되는 생방송에서 통역관의 말소리는 묻혀버릴 수 있지만, 간간히 잡아낸 통역관의 소리를 종합해 보면, 북한 측 통역관은 아주 정확하고 품격 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게 돋보였다.

트럼프 대통령보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이 더 통역하기가 쉬운 스타일이다. 트럼프는 수시로 중간에 딴 문구를 넣고, 같은 말 반복이 잦고, 즉흥적이기 때문에 통역관으로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좇는 심정일 게다. 그러니 예민할 수밖에 없다. 또, 한국말로 금방 옮기기에 꼭 들어맞는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나는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 세기적인 회담에서 정상들의 귀, 입 그리고 때로는 눈이 되어 애써 준 두 통역관들의 노고를 많이 치하해 주고 싶다. 앞으로 이어질 후속 정상회담에서도 그림자 같지만 커다란 중간 역할을 담당할 통역관들의 건투를 빈다!

<홍성애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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