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잔소리의 미학

2018-06-18 (월) 이주희 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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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의 미학

이주희 상담전문가

“먹고 나면 그릇 좀 치워.” “무슨 일이든 끝마무리 좀 잘할 수 없어?”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래?” 일상을 타고 이어지는 잔소리. 나와 같이 사는 가족뿐 아니라 직장 동료, 옆집 아줌마, 하다못해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처삼촌 조카까지, 잔소리는 끝이 없다.

나를 좀 안다는 사람만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 뜻도 모르고 줄줄 외우던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으라는 대국민 잔소리로 부터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하라”고 재우치는 광고까지, 더 잘 할 수 있는데 왜 손 놓고 있느냐는 지청구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다 보면 귀를 막고 입 좀 다물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잔소리하는 당신은 왜 모를까.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흘러나가지 않는 잔소리는 마음에 분노로만 남는다는 걸.

애초에 잔소리가 전하려는 내용이 나쁜 건 아닌지도 모른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라는 울 엄마 말씀처럼, 알고 보면 잔소리는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되는 좋은 말씀이다. 그런데 이 좋은 말씀이 비아냥과 “퍽도 잘하겠다” 비난과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는 예언의 탈을 쓰면 좋은 뜻 따위 헤아려주기 싫어진다.


옥구슬 같은 그 말씀들이 가치를 찾으려면 금사슬에 잘 꿰어져야 한다. 잔소리도 대화의 일환이니, 일방통행이 아니고 쌍방통행이 되어야 귀에 들린다. 그리고 모든 대화가 그렇듯 잔소리에도 시간과 장소와 경우가 중요하다.

들을만한 때에 들을만한 이야기만 하라.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더라. 상대를 향한 사랑과 염려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더라도, 그럴수록 간결하고 명확하게 한 마디만 뽑아내는 연습을 하라. 지금 이 말을 해서 얻고자 하는 효과가 반감인지, 깨달음인지, 삶의 변화인지 목표설정을 확실히 하고,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라.

그리고 나머지는 상대에게 맡겨버리라. 애초에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나는 아니니, 상대에게 변화할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라. 그러면서 내가 상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역시 털어버려야 한다. 상대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더, 그와 나를 동일시하거나 그의 성공과 나의 성공을 동일시하기 쉬운 법. 한 발 물러서서 묵묵히 바라봐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의 노고는 없다.

아울러 귀 막고 서있는 당신에게도 한 마디.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잔소리에 등 돌리고 버티기만 하면 봄은 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성숙이 찾아온다는 말은 헛소리다. 내가 성숙을 향해 몸을 돌리지 않으면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일들이 흔히 그렇듯, 기회는 일상의 가면을 쓰고 지나가 버린다.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길 바란다면, 감나무 밑에 누워 입을 벌리는 수고 정도는 하라.

사실 쏟아지는 잔소리 속에서 나를 향한 진심을 헤아리는 데에는 누워 입을 벌리는 일의 만 배 정도는 힘이 든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잘 다듬은 잔소리를 하고 뒤로 물러서는 일이 거대한 사랑의 노고인 것처럼, 모든 부정적인 메시지를 제하고 저를 향한 사랑의 목소리만 가려듣는 것 역시 사랑의 노고이다.

노고가 큰 만큼 얻는 것도 커진다. 짜증 섞인 잔소리에서 상대의 진심을 가려듣는 순간, 당신은 한 단계 성숙한다. 그렇게 오늘도 이 칼럼은 당신에게 잔소리를 한다. 모쪼록 이 잔소리가 잘 소화되어 당신의 성숙에 밑거름이 되기를.

<이주희 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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