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들의 감정에 귀 기울여야

2018-06-14 (목) 노윤정 미술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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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분은 어떠니?” “오늘 하루는 어땠니?” 별 말 아닌 것 같지만 이 한마디는 내가 관심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에 되새겨주고 지친 하루에 위안이 되어 주기도 한다.

뉴욕가정상담소 호돌이 프로그램의 상담시간은 항상 이 질문으로 시작된다. 학생들의 기분을 묻고 나면, 많은 아이들이 처음엔 “그냥 그래요” “괜찮아요”로 시작하다가 시간이 지나며 신뢰가 차차 쌓이고 여러 가지의 감정에 관한 단어들을 배우게 되면서 차츰 솔직한 감정들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오늘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있었어요” “기분이 좋았다가 슬퍼졌어요”…

많은 한인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감정이나 기분에 대해서 물어보기 보다는 오늘 학교에서는 무엇을 공부했는지, 숙제는 끝냈는지, 시험 성적은 잘 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이런 질문들은 결과적으로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관심 받고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주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의 감정에 중점을 둔 질문들이 아니어서 자신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수용 받았다는 기분이 들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은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부모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주며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며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와 자존감 또한 학교 성적에 좌우된다.


많은 아시안 이민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들이라고 생각 되는 것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 깊은 속에 꾹꾹 눌러 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감춰야하며 참아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정말 그 많은 감정들을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쌓아두기만 한다면 괜찮아질까?

모든 스트레스들이 마음속에 쌓이고 표출되지 못하면 그것들은 정서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불안함으로 가득 차게 하며 낮은 자존감(Low sense of self-esteem)을 형성시킨다. 그러다보면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 우울증(Depression), 수면장애(Sleep disturbance)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혹은 신체증상(Somatic symptoms)으로도 나타나 잦은 두통이나 설사병들로 이어져 우리 몸까지 아프게 하기도 한다.

필자는 호돌이 방과 후 학교에서 아동상담가로 개인상담과 그룹상담을 통해 많은 한국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업 성적은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그 마음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친구 관계나 가정 안에서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들로 인해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며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미술심리치료사인 나는 그림이나 만들기를 통해 아이들이 감정들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풀어내며 수용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우선 아이들의 감정을 물어보고, 그것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같이 찾아본다. 자신들만의 힐링 일기장(Healing journal)을 만들어 아이들이 안전한 배출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자존감 형성은 학업 성적으로만 되지 않는다.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의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며 방치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자존감은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어른이 되어 더 많은 일들을 겪기 전 건강한 자존감 형성을 만드는 것 보다 과연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아이들의 감정에 귀 기울여야

노윤정 미술심리치료사



<노윤정 미술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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