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2018-06-13 (수) 이상민/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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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이룬 4강 신화는 현재까지 아시안 국가가 낸 가장 좋은 성적으로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런데 월드컵 사상 최고 실점의 기록 또한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대한민국이 처음 본선에 진출한 1954년 월드컵 B조 리그전 첫 두 게임에서 우리는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헝가리에게 0대9 그리고 터키에게 0대7로 도합 16골을 허용하고 서독과의 세 번째 게임은 치르지도 못한 채 탈락하고 말았다. 이것이 월드컵 사상 가장 큰 실점 기록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월드컵이 있던 1954년 6월은 우리가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고 3년의 비극 6.25 동란을 휴전한지는 1년도 되는 않는 시점이었다. 나라는 부족한 예산으로 급히 결성된 국가대표팀을 쉽게 지원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일본과의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전 두 번을 모두 일본에 가서 싸워야 했다. 당시 수교가 되지 않은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일장기를 걸고 시합을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우리는 일본 땅에서 당당히 홈팀을 물리치고 스위스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낸 것이다.

월드컵 본선 행은 너무도 험난했다. 우리가 배치된 B조는 당시 최강을 자랑하는 우승후보국 헝가리와 서독이 있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였다. 그 해 우승을 차지한 서독이 결승에서 헝가리와 만난 것만 봐도 얼마나 어려운 조 편성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해외출정 경험이 없던 우리 대표팀은 항공권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며칠을 허비한다. 고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일설에 의하면 모자란 항공권을 일본에 여행 온 영국부부가 본인들 항공권을 양보해주는 바람에 겨우 22명의 대표단이 스위스로 향할 수 있었다는 스토리가 전해지고 있다.

당시는 많은 나라를 거쳐 환승을 해가며 여러 날 걸려야 갈 수 있던 시절이다. 며칠에 걸쳐 어렵게 구한 항공권으로 하네다를 떠난 대표팀이 50여 시간의 비행 후 스위스에 도착했을 때 이미 개막식은 끝난 상태였고 우리가 첫 게임을 치르기 겨우 15시간 전이었다고 한다.

제 때 도착하지 못해 하마터면 기권패를 당할 판이었다. 여정도 제대로 풀 수 없었고 유니폼 또한 제대로 갖추지 못해 등판 번호는 별도 헝겊에 써서 핀으로 붙였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최강 헝가리를 맞아 첫 시합을 겨룬 것이다.

이를 악물고 임했지만 장시간 여행에 여독을 풀지 못한 우리 선수들은 하나 둘 지쳐만 가고 결국 후반에는 쥐가 나기 시작해 4명의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런 악전 속에서 나온 0대9의 스코어는 결코 수치스런 점수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와 70년대 우리의 염원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마지막에 번번이 이란과 호주에 발목을 잡혀 본선진출이 좌절됐다. 그러다 어느덧 이번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9회 연속 참가하는 국가가 됐고 통산 10번째로 아시안 국가로서는 최다 참가 기록을 갖게 됐다. 이 모두가 1954년에 시작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 ‘죽음의 조’에 배치돼 16강에 오르기도 힘들 것 같다며 많은 이들이 실망부터 한다. 이참에 한번 혼 좀 나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다. 본선 진출이 소원이라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가 월드컵 최악의 기록을 세운 54년도의 자랑스런 우리 대표팀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열 번째 참가하는 우리 대표팀은 한없는 우리의 자랑이다. 국위선양을 향해 떠나는 이들에게 우리는 마땅히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야 한다.

<이상민/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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