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드컵과 순혈(純血)축구

2018-06-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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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마다 전 세계는 광기에 사로잡힌다. 월드컵 축구가 불러오는 열풍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나.

가장 원초적 스포츠다. 건강한 신체와 신체가 맞부딪힌다. 파워와 스피드의 팽팽한 대결. 그 가운데 어느 순간 상대의 허점을 비집고 공이 대포알처럼 날아가 골네트를 가른다. 그 묘미에 모든 것을 잊고 빠져드는 것이다.

게다가 룰(rule)은 아주 간단하다. 상당히 정교하고 복잡한 룰이 적용되는 야구에 비하면 축구의 단순함은 하나의 미학으로도 불린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민족주의(Nationalism)적 성격 때문이다. 국가 대항전 형태의 월드컵이 특히 그렇다.

세계 각국 대표 팀에 따라붙는 애칭을 봐도 알 수 있다. 전차군단(독일), 무적함대(스페인), 아주리군단(이탈리아) 등 그 애칭들은 모두 호전적으로 들린다. 태극전사로 불리는 한국의 경우 그 표현은 더 직설적이다.

“K리그에는 관중이 안 몰린다. 썰렁할 정도다. 그런데 국가대표 대항전 경기가 열리면 붉은악마를 자처하는 붉은 티셔츠 차림의 서포터들로 경기장이 꽉 찬다. 특히 한국 대표 팀이 잘 나갈 때는.”

한국에서 축구는 여전히 내셔널리즘에 매몰돼 있다고 할까. 그 현상을 꼬집은 말이다. 축구를 축구로서 즐기는 것이 아니다. 뭐랄까. 대리전쟁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러니 한국 대표 팀이 일본에게 지는 날이면 선수들은 태극전사가 아니고 역적이 된다.
100% 한국혈통의 선수들로만 대표 팀이 구성돼 있다. 순혈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이 점도 한국 대표 팀의 특징이다.

프랑스의 축구 영웅은 알제리계인 지네딘 지단이다. 그 지단과 함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끌어낸 크리스티앙 카랑뵈는 남서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출신이다.

한 세대 전부터 프랑스는 아랍. 흑인계 등을 망라, 다인종 다문화 출신을 대표선수로 영입해 들인 것이다. 프랑스뿐이 아니다.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 다른 유럽의 축구 강국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일본도 순수 일본인이 아닌 외국혈통에게 대표선수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지구촌 최고의 축구 축제, 월드컵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 무대는 러시아이다. 한국은 9회 연속 그 무대에 선다. 하지만 국내 관심은 전무 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낮다.

미-북 정상회담 영향이란 말도 나오지만 아무래도 실망스런 경기력 탓이 커 보인다. 턱걸이로 간신히 본선 행 티켓을 따냈다. 러시아 입성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평가전에서도 세네갈에 2 대 0으로 완패, 전체 모의고사는 1승1무 2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세계화는 현대 축구의 대세다. 그 흐름을 외면한 탓은 혹시 아닐까.

분석은 그렇다고 치고, 다시 한 번 한국 팀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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