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승선이 눈앞에 있어요!”

2018-06-07 (목) 임지석 목사
작게 크게
“결승선이 눈앞에 있어요!”

임지석 목사

지난해 12월 10일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BMW 댈러스 마라톤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성부 1위로 달리고 있던 첸들러 셀프라는 뉴욕의 정신과 의사가 결승선을 고작 183m 남기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완전히 풀려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던 2위 주자에게는 다시없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위로 달리던 17세의 고교생, 아리아나 루터먼은 첸들러를 부축하고 함께 뛰기 시작했다. 아리아나는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첸들러에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결승선이 바로 눈앞에 있어요.” 라고 끊임없이 응원을 하면서 함께 달렸다.

그리고 결승선 앞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등을 밀어주면서 그녀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날 첸들러는 2시간 53분 57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2위인 아리아나에게 더 큰 환호와 찬사가 돌아갔다. 아리나아는 12살의 어린 나이부터 댈러스의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이들을 도왔다는 아름다운 선행이 알려지기도 했다.


오늘의 사회는 사람들을 경쟁으로 몰아넣어 줄 세우기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생김새나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가 하면, 재산이나 권력을 이용해서 남들을 줄 세우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줄을 서는데 있어서 우리는 남보다 앞설지언정 뒤에 서려고 하지 않으며 심지어 편법과 반칙을 동원해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고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줄을 잘못 섰다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줄을 잘 서서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조류를 따라서 너무 잔꾀 부리며 약삭빠르게 살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걸어온 인생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용히 등을 밀어주었던 누군가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앞만 보면서 열심히 달리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해관계를 버리고 첸들러의 등을 밀어주었던 아리아나와 같이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수고와 희생으로 밀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2등이나 3등을 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에게 주어진 1등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묵묵히 조연의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인정하는 주연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경주장에서 나보다 뒤쳐져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당신 역시 누군가의 등을 힘껏 밀어줄 수 있는 따뜻한 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영광을 가로채기보다는 결승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다.

때로는 인생의 경주장에서 뒤처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아리아나와 같이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이 귀하고 복된 것이다. 조연배우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연기는 주연배우가 받을 명예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임지석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