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키싸움’ ‘기싸움’

2018-06-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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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에게 외모는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다. 얼굴이 잘 생기고 키가 크면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데 유리하다. 특히 미디어가 선거를 지배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이미지를 만들고 유권자들에게 이를 각인시키는 데 잘 생긴 외모는 톡톡한 역할을 한다.

외모요소들 가운데 특히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치학자들이 꼽는 것은 키이다. 큰 키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선거는 상대가 있는 싸움이다. 키가 큰 정치인은 상대보다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자연스레 시선을 모으는 데 유리하다. TV토론이 일반화되면서 후보의 키가 유권자들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좀 더 커졌다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키와 선거 간의 상관관계를 뒷받침하듯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키는 일반인들보다 컸던 것으로 나타난다. 6피트4인치(193cm)의 장신이었던 링컨과 린든 B. 존슨 대통령을 필두로 180cm가 넘는 대통령들이 즐비하다. 특히 1980년 이후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들 가운데 180cm 이하는 단 한 명도 없다.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키도 190cm에 가까웠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키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인의 큰 키가 곧 그의 능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이런 선택을 많이 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남은 ‘원시적 뇌’ 때문이라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인들에게는 아직 원시의 뇌가 남아있으며, 이 뇌는 약탈자로부터 부족을 지켜 줄 수 있는 큰 키와 다부진 턱, 관대하고 용맹한 성격 등을 지닌 원시시대의 리더상을 여전히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트럼프 대통령 또한 190cm의 장신이다. 게다가 몸집도 크다. 이렇듯 거구인 트럼프가 오는 12일(LA시간 11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그런데 두 사람 간의 신장차이가 너무 커 의전 담당자들이 고민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김정은 위원장의 키는 170cm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설 경우 김 위원장이 왜소해 보이는 건 당연하고 마주 설 경우에는 우러러 봐야 한다.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구도이다. 그래서 양 정상이 동등하게 보이는 앉은 장면의 사진촬영만 고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지도자의 키에 대단히 민감한 사회다. 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은 키를 커보이게 하려고 평소 12cm 가량의 키높이 구두를 애용했다. 당시 김정일의 실제 키는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져 있었다. 사진 찍을 때도 그의 키가 작아 보이지 않도록 앵글과 측근 배치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아버지처럼 높은 굽의 키높이 구두를 신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소 유치해 보일 수 ‘키싸움’이 어떤 지도자들에게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싸움’이 될 수도 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김정은이 어떤 구두를 신고 나올지, 또 두 사람이 어떤 구도의 사진을 찍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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