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글 예선’

2018-06-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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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카운티는 그 이름이 말해 주듯 원래 오렌지 밭이었다. 주민들도 절대 다수가 백인 농부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제2차 대전이 끝나면서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업종이 다양해지고 60년대 이후 아시안과 라티노가 몰려들면서 인종 구성도 바뀌었다.

이와 함께 보수 공화당의 아성이던 오렌지 카운티의 정치 지형도 달라지고 있다. 올 가을 열리는 연방하원 선거에서 현재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해 볼만한 가주 지역구는 7개가 꼽히는데 그 중 4개가 오렌지 카운티에 있다. 연방하원 다수당이 되기 위해 23석을 늘려야 하는 민주당으로서는 오렌지 카운티에서의 승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추세로 보면 판세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2002년 공화당은 120년만에 처음 가주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인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2003년 무능한 그레이 데이비스가 소환되면서 얼떨결에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지사에 선출되기는 했지만 그 때뿐 2010년 이후에는 역시 민주당 독무대였다.


이 와중에도 오렌지 카운티는 꿋꿋이 공화당 정치인을 배출해왔으나 이곳마저 최근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7년까지도 이곳 공화당원 수는 민주당보다 26만이 많았지만 이제는 겨우 5만 명 차밖에 없다. 이곳 공화당의 중진인 에드 로이스와 대럴 아이사 연방 하원의원이 올해 은퇴를 발표한 것도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곳 출신 다른 공화당 하원의원인 미미 월터스와 데이나 로라바커도 올 가을 낙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민주당의 투표 참여 열기는 매우 높다.

그런데 열기가 너무 높아 문제다. 가주는 미국에서 드물게 ‘정글 예선’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당적에 관계없이 예선에서 1, 2등을 한 사람이 11월 본선에 나가는 제도다. 2010년 이 제도가 채택될 때 지지자들은 이렇게 하면 자기 당 골수분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후보들이 극단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협치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쪽 당 후보가 너무 많아 표가 갈릴 경우 오히려 소수의 지지를 받는 엉뚱한 후보가 본선에 나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올 민주당 형편이 꼭 그렇다. 민주당 승리가 유력한 오렌지 카운티 3개 지구의 경우 민주당 후보가 무려 15명에 달한다. 민주당 표가 조각 조각 갈릴 경우 공화당 후보 2명이 본선에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제도 때문에 올 가을 가주 지사 당선이 유력시되는 개빈 뉴섬은 같은 민주당인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공화당의 존 콕스는 오히려 공격하는 척 하며 띄워줬다. 콕스와 본선에서 맡붙으면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가주에서 결과는 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공화당 입장에서도 콕스가 2등을 하는게 절실히 필요하다. 가주 최고 고위직인 주지사 선거에 후보조차 내지 못한다면 실망한 공화당 유권자들이 아예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불리한 연방하원 선거가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엉뚱하게 뉴섬과 공화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각 당에서 한 명의 후보를 내던 옛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어려울 전망이다. ‘정글 예선’ 도입 이후 가주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졌다며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보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가 불분명한 가주 예선의 혼란스런 모습을 상당 기간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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