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정은과 알아사드

2018-06-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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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악의 독재자 톱 10’ 중 제 1위는 꽤 오랫동안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무가베가 차지했었다. 최근 들어 랭킹에 변화가 생겼다.

악명 높은 인종청소로 30여만이 사망하고 250여만의 난민이 발생한 다르프르 대학살의 반(反)인륜범죄로 국제사법 재판소가 체포영장을 청구한 오마즈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1위로 등극한 것이다.

세계 최악의 독재자 리스트에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손자 3대가 그 이름을 올린 진기록도 포함돼 있다. 김일성에서 정일, 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김씨 왕조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가문의 기록은 이에 조금 못 미친다. 아버지 하페즈와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2대의 이름이 그 리스트에 올라 있다.

늙은 독재자가 숨을 거둔다. 그 자리를 젊은 독재자가 차지한다. 그럴 때 마다 서방언론은 전대 보다 덜 포악한 독재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 독재자가 서방국가에서 교육을 받았을 경우에는 더 희망적 보도가 넘쳐난다. 어린 시절 서방에서의 생활경험이 통치에 반영이 될 거라는 기대에서다.

시리아 알아사드 가문의 2대 독재자 바샤르는 런던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것도 인명을 살려내는 의사로서 교육을 받았다. 때문에 더 기대가 높았다. 현실은 그러나 정반대로 나타났다.

햇수로 8년 째 이어지는 내란으로 50여만이 사망하고 전 국민의 절반에 이르는 1000여만이 난민이 됐다. 이 아수라의 상황에서 여전히 극도로 사치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화학무기 공격을 서슴지 않는 잔악성을 과시한 것이다.

그 공로(?)로 한 때 12위로 최악 독재자 톱 10 문턱에 주저앉았던 바샤르 알아사드의 랭킹은 3위로 수직 상승했다.

스위스에 유학하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도 배웠고 미국의 팝문화를 좋아하며 NBA농구의 광팬인 김정은이 수령에 등극했을 때도 서방언론은 역시 기대에 들떴었다.


김정은 통치 6년은 그러나 피와 공포로 얼룩졌다. 탈북자 대대적 단속이 그 스타트였으며 이후 계속된 피의 숙청과 함께 군과 당·정의 고위관료 340명이 고사포로 쏴 흔적을 없애는 등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됐다. 절정은 고모부 장성택 처형과 이복 형 김정남 암살이었다. 김정남 암살의 경우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독극물 VX 신경가스를 사용해 그것도 한 낮 외국의 공항에서 일을 벌였다.

그 한편으로 잇단 핵실험에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쏴 세계를 핵공포에 떨게 했다. 그 업적(?)으로 김정은은 세계 최악 독재자 2위에 랭크됐다.

알아사드 시리아대통령이 국빈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고 지난 주말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하필이면 어렵게 성사된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지금 김정은은 왜 미국의 가장 큰 골치 덩어리 중 하나인 알아사드을 만나려는 것일까. “트럼프의 분노를 초래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북한이 다가올 회담에서 전술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고, 그들의 만남이 “트럼프를 자극할 것 같지는 않다”는 신중론도 있다.

어쨌든 선대부터 동맹관계로 유대가 끈끈히 다져진 세계 최악 독재자 2위와 3위의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그 모양새가 엽기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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