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2018-06-04 (월) 폴 손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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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폴 손 엔지니어

창조주가 피조물로 하여금 도전하지 못하게 한 장치가 있다면 아마도, “피조물은 먹어야 산다”는 것이 아닐까?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는 질문에 대해 어느 쪽으로 답이 나오든 피조물은 먹어야 산다는 자명한 사실 앞에 이기적임을 고백한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에서 발생했던 지진과 쓰나미 당시, 일본인들이 식수 배급을 받기 위해 보인 질서 정연한 모습은 혹시 저들이 기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었다.

인근의 어느 한인교회는 1년에 두 학기 노인학교를 개설한다. 한 학기 10주간에 걸쳐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이 노인학교에서는 아침 두 시간은 각종 강의가 있고, 셋째 시간에 예배를 드린 후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점심식사는 메뉴가 계속 바뀌는데 식단을 짜는 분들의 수고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어, 반찬 투정하는 노인들은 안 계신 것 같다.


담당자의 이야기를 빌리면,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수보다 식사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매번 20명 정도 많다고 한다. 또 다른 교회에서는 주중에 노인들께 식사 대접을 하고 각종 강의를 제공하는데, 예산부족으로 무료로 제공되던 점심을 3달러씩 받으니 참석자들이 싹 줄었다고 한다.

3달러가 어떤 노인들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액수이지만, 다른 노인들에게는 부담스런 금액이 된다. 나이 들면, 생활비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남에게 밥 한끼 살 형편이 안 되면 친구도 떨어진다.

노인학교에 처음으로 등록해서 갔더니 ‘어린’ 노인부터 연로한 노인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모였다. 나이 들어 우리네 얼굴에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요약되어 있다. 주름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볼 수 있고, 보톡스 맞은 뺨 속에서도 근심을 찾아볼 수 있다. 작고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당신의 삶을 사랑하세요, 그러면 당신의 삶이 당신을 사랑해 줄 것입니다”라는 말처럼 고된 삶을 탄식하면 탄식하는 만큼 노후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노인학교의 봄 학기 마지막 날에는 특식으로 백숙이 나왔다. 때마침 교회 내에서는 선교 바자회가 열려서 각종 음식도 팔고 있었다.

맨 마지막으로 배식을 받아 빈자리가 있는 테이블로 갔더니 한 할머니와 나이든 아들인 듯한 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이블 가운데엔 김치가 없고 할머니 앞엔 김치 접시가 여럿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슬며시 김치를 상 아래 쇼핑백에 넣으셨다.

평생을 원칙과 정확성을 따지는 엔지니어로 살아온 덕분에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무슨 김치를 가지고도 욕심을 내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때마침 아내가 바자회에서 세 개들이 호떡을 사와선 그 할머니께 호떡을 하나 권했다. 갑자기 그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이 들어 호떡도 하나 살 형편이 안 되는 듯한 그 할머니께 호떡으로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형편이 되는 내가 베풀면 되는 게 아닌가.

나머지 호떡도 다 가져 가시라고 하니 정말 “이게 웬 떡이냐?”하는 할머니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갑자기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말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느꼈다.

<폴 손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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