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추 한 알

2018-05-26 (토)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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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졸업 반세기 홈커밍 초청장이 왔다. 망설였다. 미국서 반평생을 살아온 내가 과연 친구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말과 마음이 통할까? 서울의 봄바람은 따스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200여명 동기들이 북악 아래 모교의 동산에 모였다. 고3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친구들만 낯이 좀 익었다. 대부분 은퇴한 백발 노익장들의 면모는 낯설었다. 그러나 학연은 끈끈했다.

첫 만찬 때 동기 회장이 잔을 높이 들었다. 이게 뭐여? 우리는 화답했다. 술이여, 그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여, 정(情)이여... 그 시간 이후 우리는 모두 옛정으로 뭉쳤다. 살면서 쌓아온 자존심, 명예, 재산 등을 다 내려놓고 가장 아픈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몸의 지병이나 상처, 자식들로 받는 고통들을 스스럼없이 나누었다.

강남에서 크게 성공한 동기가 일어섰다. 그는 자신이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으로 매일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를 털어놓았다. 돈보다 건강이라면서 아픈 귀를 막고 말했다. 고해성사 같은 그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사장으로 은퇴한 친구는 치매에 걸린 구순 어머니를 돌본다고 했다. 결혼 당시 잘난 아들보다 모자란 며느리라고 평생 구박한 시어머니의 간병을 아내가 거부한 탓이라고 했다. 개중에는 아침부터 술에 취한 애주가도 있었다. 행사도중 주정을 부려도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왜 그리 되었냐고 묻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그의 해장국을 번갈아 챙겨주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개” (‘대추 한 알’, 장석주)

대추 한 알. 우리는 제각각 깊은 사연을 품고 살아온 열매들이었다. 인생의 험난한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맞으며 속으로 영글고 반 쯤 썩었다가 살아남은 노익장들이었다.

동기회는 이번 행사를 위해 2억 펀드를 조성했다고 했다. 모교를 찾아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전달식을 가졌다. 그런데 총동창회 총무는 기막힌 이야기를 했다.

“선배님들, 평준화 후 강북에 남은 모교는 이제 명문이 아닙니다. 올해 서울대에 한 명도 못 들어갔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은 다 강남으로 갔습니다.”

그는 또 정치, 경제계 선배들이 찬조금을 모아 지은 체육관을 보여주며 말했다. “남학교인 모교에 여교사가 70%입니다. 임용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선지 체육관에서 남학생들이 농구 대신 공기놀이를 하며 놉니다. 게다가 사교육이 성해 교사들도 가르침에 관심이 없습니다. 전교조 탓인지 애국심도, 애교심도 변질된 세대가 되었습니다.”

세태가 왜 이리 변했을까? 그러나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세태란 그 세대를 살아간 사람들 책임 아닌가? “가난한 대한민국을 세우느라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피땀을 흘렸다. 너희 세대는 너희들의 책임이다. 삼포(三抛)도 너희들의 업보다”라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옛 수학여행 가듯 강원도로 떠났다. 1박2일 뒹굴며 서로가 열심히 살아온 자랑스런 내 친구임을 일깨워주는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었다. 여행 후, 내 고3 짝이 나를 초대했다. 지금도 옛 미소 그대로다. 강남에서 20여년 명가 한식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벌인 첫 사업이 망해 몇 번이나 야반도주를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3때 내가 한말이 가슴에 맺혔다는 것이었다. “인생은 곱셈이다. 내가 제로면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내가 어떻게 그런 명문을 읊었는지 조금도 기억에 없다. 다른 이가 한말을 내가 했다고 혼동하는지도 몰랐다.

그는 말했다. “그 후 제로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벼랑 끝에서 그 비결을 발견했다. 아내와 24시간 같이 일하는 스트레스를 극복하느라 매일 아침 성경 2장을 같이 읽었다. 미워도 기도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살렸다.”

그의 비결은 내가 앞으로 가슴에 새길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어디에 살았어도 시간과 공간은 결코 대추 한 알, 인간을 넘어서지 못했다.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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