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떠나보내기

2018-05-25 (금) 강희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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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부모로서 자식에게 해 주어야 할 3가지에 대한 강의를 본 적이 있다. 첫째는 배 아파서 아이 낳기, 둘째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예뻐해 주기, 그리고 셋째는 때가 되면 내 품에서 떠나보내기였다.

앞의 두 가지를 들으며 ‘나는 부모로서 잘 해오고 있군’ 하다가 세 번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내 품에서 떠나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지구상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시기가 가장 늦은 개체가 인간일 것이다. 동물은 빠르면 한두 달이면 독립하는데 인간은 독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30년은 되니 말이다. 설령 물리적인 독립을 한다 해도, 정신적,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식들도 있고, 자식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간섭하며 끈을 놓지 못해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하는 모습도 종종 본다. 그러한 갈등은 아들과 딸의 구분이 없다.


나도 1년여 전부터 두 아이와 떨어져 살고 있다. 아이들이 미국 사회에서의 좀 더 빠른 적응과 독립적인 삶을 위해서 그리고 나도 며느리 보기 전에 아이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기 위한 연습을 위해 시도한 일이다.

사실은 좀 소극적인 큰 아이를 위해서 말을 꺼냈는데 둘째 녀석이 냉큼 “엄마 저도 나가 살아볼게요” 하면서 우리 셋은 멀지는 않은 곳에 각자 따로 살고 있다. 물론 아직 일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이기에 약간의 경제적 도움은 주고 있다.

결정하고 아이들을 내보낼 즈음에는 내가 괜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혼자 울기도 했다.

아이들이 나간 후 한동안 ‘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아이들이 없는 집으로 향하면서 집이라는 곳에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냥 가게에서 먹고 자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지고 볶고 잔소리를 해대던 시간이 그립기도 했다.

얼마 전 작은 아이를 만나서 “혼자 사니까 어때, 좋아? 힘들지 않아?” 하고 물으니 아이가 “엄마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좋다”고 한다. 큰 아이도 마찬가지의 대답이었다. 더 이상 이 아이들과 같이 살 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잘 적응해 독립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나도 자유롭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아이들을 내 품에서 떠나보내기’는 잘 실천되고 있는 것 같다.

<강희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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