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몽니’, 그 정의는…

2018-05-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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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니’란 말이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 부리는 성질’- 우리말 사전의 몽니에 대한 정의다.

일이 순조로워도 너무 순조로웠다.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더 나아가 미-북 관계가 그렇게 풀렸다. 그러다가 북한이 갑자기 삐딱하게 나왔다.

그것도 북한 측 제의에 따라 약속됐던 남북고위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한국 기자의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 탈북자를 되 돌려보내라고 생떼다. 그뿐이 아니다.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이 ‘(미국의 비핵화 요구는)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미-북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자 한국의 국내 신문에 일제히 등장한 말이 ‘북한의 몽니’다.

미-북 정상회담 한 달도 안 남았다. 이 시점에서 북한은 그러면 왜 또 몽니 짓인가.

체제보장이 아무래도 불확실해 보인다. 그에 따른 근본적 불안감을 몽니 짓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리비아니, 이라크를 운운한 김계관의 발언에서 그런 초조감이 느껴진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핵무기 개발에 손을 댔다가 핵 프로그램을 완전 폐기했다. 그 때가 2005년이다. 6년 후 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리비아에도 몰아쳐 리비아에서도 민주화 항쟁이 발생했다. 그 항쟁은 내란으로 확산, 2011년 8월 카다피는 시민군에 붙잡혀 죽었다.

왜 카다피가 그 같은 최후를 만났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서’가 김정은 체제 북한의 해석이다. 맞는 해석일까.

“나라가 보배로 삼아야 할 것은 임금의 덕일 뿐 지형의 험난한 것은 아닙니다. …은(殷)나라는 맹문산을 왼쪽에, 태행산을 오른쪽에 두고 있고 하수가 그 남쪽을 둘러 있으나 주왕(紂王)이 덕으로써 정치를 하지 않아 주(周)의 무왕(武王)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왜 체제가 무너지는가에 대한 아주 고전적인 해석이다.


험난한 지형을 갖추었다는 것은 요새말로 하면 핵무기에 버금가는 전쟁 억지력(deterrence)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철벽같은 방어벽도 집권자가 패륜에 가까운 정치를 펼치면 민심이 흩어져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다.

왜 카다피는 시민군에 피살됐나. 핵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40년간의 1인 독재 철권통치, 그 피의 업보다. 카다피 리비아의 교훈은 인권을 외면한 독재정권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이다. 체제보장은 그러니까 근본에 있어 국민이 해주는 것이지 외세가 아니라는 거다.

세계최악의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고문에, 강간에, 인신매매 등 반인륜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거기다가 굶겨 죽인 사람만 백만 단위에 이른다. 그런 체제가 그 수령유일주의체제유지를 보장하라고 미국에 대해, 국제사회에 대해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격이다.

그 행위를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몽니 질’- 이 말로는 오히려 미흡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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