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2018-05-19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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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은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이며,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연설을 남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39세의 나이로 암살당한 날이다. 이 연설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이어 노예해방 이후 법적으로는 자유시민이 되었으나 실생활에서는 아직 차별의 대상인 흑인들의 민권운동을 재점화 시킨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명연설이다.

킹 목사 서거 이후 반세기가 조금 지난 현재, 그가 열정을 가지고 추구했던 흑인들의 권리 향상은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꿈이 완성될 때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증거는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잊을 만하면 다시 일어나는 흑인 용의자에 대한 묻지마 총격대응, 최근에는 스타벅스 커피샵에서 커피를 주문하지 않고 앉아있었다는 사소한 이유로 경찰이 들어 닥쳐 수갑을 채웠다는 사건 등이 그 예들이다.


반면에 흑인학생의 입학을 금지하거나, “흑인과 원숭이는 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음”과 같은 극단적인 인종차별은 사라졌고, 사회의 고위직이나 지도층에 흑인이 다수 진출한 것은 킹 목사의 꿈이 현재진행형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큰 꿈을 꾼 사람으로는 또 한국의 한 전직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일찍이 대기업 경영인으로 큰돈을 번 이분은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차츰 권력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부하들에게 “내가 큰 꿈이 있으니 앞으로 언행에 조심하라” 는 당부를 했다는 보도를 읽었다.

그러나 한국 대선 역사상 가장 큰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그의 5년 임기 중 행적을 보면, 그의 큰 꿈은 “이제 돈을 벌만큼 벌었으니 지금부터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막대한 재산총액에 ‘0’을 무한으로 더하겠다는 욕심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큰 기대를 등에 업고 대통령 직에 오른 분이, 본질적으로 킹 목사의 큰 꿈과는 너무나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국민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 후였다.

세 번째, 큰 꿈을 꾼 사람을 꼽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이미 막대한 재산가이면서 백악관의 주인으로, 최강국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이분의 꿈은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뉴스에 비친 그의 모습은, 꿈을 실현해서 만족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화가 잔뜩 난 사람의 모습일 때가 많다. 현재 이룬 꿈보다 “훨씬 더 큰 꿈” 을 꾸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에 매일 비판의 화살을 쏘아대는 진보성향의 언론공격에 대한 분노 때문인 듯하다.

대체 그가 품고 있는 “훨씬 더 큰 꿈” 은 어떤 것일까? 아마 모스크바를 비롯해서 세계 대도시마다 트럼프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타워를 세우고, 이 많은 타워에서 매일 달러가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 그리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길이길이 독점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19세기말 독일 소도시 출신의 이민 3세로서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특출한 능력을 보여준 트럼프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이나 오만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소시민인 나의 꿈은, 개인의 영광보다는, 상식과 연민을 갖추고, 인류전체의 공동선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지도자를 가졌으면 하는 것인데, 어쩐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순진한 꿈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이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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