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 그 땅!

2018-05-19 (토) 김옥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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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 살이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차 세계대전이 마지막으로 접어들던 무렵,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황해도 연백군 금산면 대아리란 곳으로 소개를 가서 약 2년간 살았다. 당시 좀 여유 있던 집안들은 미군의 폭격을 피해 시골로 피난을 갔던 것을 소개라고 불렀다.

나는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어릴 적 살던 그 황해도 땅이 그림처럼 떠오르곤 한다.
내 생전 그곳을 한번 가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때마다 그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왜냐하면 그 시절은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나 엄마가 계셨고, 언니 둘과 오빠가 함께 살던 행복한 유년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집 뒤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있고 밤이면 승냥이나 여우들 우는 소리로 으스스 몸이 시렸다. 아침이면 닭장의 작은 둥지를 뒤져 따뜻한 달걀을 꺼내오던 기억이 새롭다.


앞에는 툭 터진 논들이 끝없이 펼쳐졌고 조금 걸어 나가면 깨끗한 물이 흐르던 개울도 있어서 여름엔 동네 아이들과 함께 붕어도 잡고 멱도 감으며 즐겁게 놀았다.

얼마 전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보면서 나는 75년 전에 떠난 그 황해도 땅을 생각했다.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념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너나 이 가슴이 뭉클 하는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동안 고국의 뉴스를 보면서 김정은이 나올 때마다 찐 돼지를 떠올렸는데 그날은 그래도 ‘좀 귀여운 데가 있는 친구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두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 분계선을 넘나드는 것을 보고 정말 이제부터 평화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나는 이산가족도 아니고, 실향민도 아닌데도 이렇게 기분이 들뜨고 좋은데 정작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나 가족들과 헤어져 오랫동안 오매불망하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를 생각해보니 새삼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이해되기도 했다.

해방이 된 후 우리 가족은 그해 가을 기차도 타고 작은 배로 갈아타면서 몽금포라는 항구에서 마포까지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삶은 아슬아슬했다. 또 6.25 전쟁을 겪고 먼 미국 땅까지 이민 와서 현재까지 무사히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내 연배는 모두가 이 말을 이해한다. 제 각기의 삶은 달랐지만 우리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전쟁과 배고픔과 가난을 겪었고,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후 이 미국 땅에 정착할 때까지 여러 가지 역경을 겪었다.


김정은이 한 말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우리는 한 핏줄, 한 문화를 가진 같은 민족인데 남쪽으로 오는 길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명록에 ‘새로운 역사, 역사의 출발점, 평화’라고 썼다.

이제 개성공단도 다시 시작이 되고 금강산도 개방이 된다면 나도 여행객들 속에 끼어 이북 땅을 한번 밟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옛적 꼬마였을 때 엄마 손 잡고 황해도 땅을 기차를 타고 달렸을 때처럼, 이제는 흰 머리칼을 날리며 그곳을 또 한번 가볼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니 어느덧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 그 땅! 아마 그 땅과 산천은 여전하겠지만 그때 함께 있던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내 옆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땅은 내 유년의 추억 속에서 지금도 가슴 속에 별처럼 빛나곤 한다.

<김옥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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