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유 있는 기다림

2018-05-11 (금)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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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기다림

고명선 수필가

오늘 일과를 운동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헬스클럽으로 향한다. 낮을 할애하여 운동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퇴근 후에 곧바로 운동 가방을 둘러맨다. 집과 헬스클럽은 차로 잠깐 달리는 거리지만 오갈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계절이나 그날그날의 날씨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시각적인 것보다 몸인 것 같다.

왕성한 봄의 기운은 모두의 몸을 활기차게 하여 마음을 가뿐하게 한다. 오늘은 날이 화창하니 어제 보다 운동의 강도를 높여야겠다. 탈의실은 언제나 왁자지껄 활력이 넘친다.

탈의실 옆의 줌바댄스 수업이 막 시작되었는지 라틴음악 소리가 육중한 천장을 뚫고도 남을 기세다. 힘과 열정이 살아있는 댄스강사의 리듬 타는 목청이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나의 굼뜬 동작을 재촉한다.


줌바댄스 룸과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인 넓은 룸을 피해 여성 전용의 작은 룸에 드니 운동기구 부딪치는 쇳소리와 운동하는 사람들의 거친 호흡이 나를 압도한다. 땀 흘리며 흡족해하는 이들의 표정은 새로운 날을 맞아들이기 위하여 밤을 불사르는 전사들의 모습 같기만 하다.

나는 가끔 줌바댄스 수업에 들어가긴 하지만 내가 짜놓은 운동계획을 따른다. 10분 동안 준비운동을 하고 난 뒤에 고정된 자전거를 30분 넘게 타다 보면 굵은 땀방울이 이마에서부터 온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운동할 때의 땀은 몸도 가볍게 하지만 마음에 침전된 찌꺼기까지도 씻어 내리게 한다.

몸보다는 마음이 무거워져 있는 요즘의 나 자신을 돌아본다. 몸이 무거우면 생활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만 무거운 마음은 자유를 앗아간다. 무게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짐은 머리부터 짓눌러 한걸음도 뗄 수 없게 한다.

건강할 때 저축하듯 하는 운동은 노년에 찾아드는 갑작스러운 질병을 가볍게 이겨낼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서도 건강은 중요하다. 작년부터 병원을 자주 찾는 남편을 지켜보며 삶의 질은 건강이 결정해 준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수시로 찾아들어 짓누르는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헬스클럽을 찾는지도 모른다.

꽉 채운 한 시간의 운동이 부족하긴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조금은 무거웠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간단히 땀을 씻어 내고 열린 차창으로 젖은 머리 날리며 귀가하는 시간이 이유 있는 기다림이라면 기다림일 것이다.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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