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중미술의 부상

2018-05-02 (수)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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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미술계는 민중미술이 강세다. 시발점 역할을 한 그림은 지난해 청와대 본관에 걸린 임옥상의 ‘광장에, 서’(2017)이다. 30호 캔버스 108개를 이어 완성한 대작으로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 모습이 담긴 개인 소장품을 청와대가 대여 전시하고 있다.

남북정상이 만났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역사적 순간에는 민정기의 ‘북한산’(2007)이 배경이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데 이 그림 역시 시선을 압도하는 대작이다.

두 작가 모두 한국 민중미술의 1세대로 신학철, 오윤, 박불똥 등과 함께 활동했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등장한 미술 흐름의 한 형태이다. 한국사회의 암울한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탄생한 민 미술은 적절한 영어 표기가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옮긴 ‘Minjung Art’이다. ‘선전 미술’(Propaganda Art)과는 엄연히 다른 장르다.


한국 민중미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작품이 신학철의 ‘모내기’(1987)다. 통일에의 염원을 농사꾼의 모내기에 빗대어 그린 100호짜리 유화인데 1989년 9월 북한을 찬양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지목돼 검찰 창고로 들어갔다가 올해 초 29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보관 위탁되었다.

검사 압수물 창고에 접어 보관하면서 그림 일부가 훼손된 ‘모내기’는 유홍준 미술평론가가 묘사하기를 아래쪽부터 쟁기로 논을 갈고 모내기를 하며 추수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화면 위쪽은 복사꽃 핀 초가마을과 천둥벌거숭이로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통일의 상징으로 백두산을 그려 넣고 천도 복숭아가 커튼처럼 둘러 있는 순박함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한다.

한국의 민중미술은 지난해 10월 씨메이 갤러리 메이 정 관장이 임옥상 초대전을 열면서 미국 화랑가에 소개됐다. 서울대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1991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1991 임옥상 회화전’으로 한국의 민중미술을 주류 미술계에 들여왔다는 평을 받는데 이 전시에서도 에피소드가 있다.

민주화 운동의 거목 고 문익환 목사가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넘고 있는 모습을 담은 ‘하나됨을 위하여’(1989)를 전시하고 싶어했는데 갤러리 측에서 당국이 막는다며 이 작품을 걸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개막식에 참석한 문익환 목사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두 사람이 그림을 들게 해서 문익환 목사와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단색화 열풍에 이어 ‘민중미술’이 한국미술의 세계시장 붐을 일으키길 기대하는 눈치다. 그런데 ‘민중미술’이 미술시장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미술 경매에 나와 기록 갱신을 하더라도 초대작인 이 작품들은 정부 청사 등 공공장소에 전시돼 민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하는 게 맞다.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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