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언제부터 국수를 먹었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국수의 역사는 최소 4,000년은 되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중국 북서부 청해 지역에서 유물 발굴 작업을 하던 연구팀이 라지아라는 곳에서 기원 전 2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수 원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국수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곳도 중국이다. 한나라 때 나온 역사서에는 중국인들이 그 때부터 밀 반죽으로 만든 국수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에서 국수 요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갔다 짜장면을 보고 돌아와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시칠리아 지방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의 국수 영향을 더 받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국수 요리는 대부분 끓인 국물과 같이 먹거나 양념에 비벼 상온으로 먹는 것이 보통이며 얼음처럼 차게 해서 먹는 국수는 드물다.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인 평양 냉면이 바로 그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평양 냉면을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기부터인 것으로 보고 있다. 평양에서 출간 된 한 요리 서적은 냉면 발상지를 평양 대동강 구역 의암동 일대로 잡고 있다. 메밀 수제비 반죽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은 것이 냉면의 시작이라고 한다.
평양의 대표 식당인 옥류관에서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에 따르면 이곳 냉면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냉면과 달리 짜거나 달거나 한 강한 맛이 없고 밋밋한 것이 특징이다. 서울 마포에는 옥류관에서 일을 하다 탈북한 요리사가 차린 ‘동무 밥상’이란 식당이 있는데 이곳 냉면이 정통 평양 냉면 맛과 가장 비슷하다 한다.
하긴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서울 내 유명 평양 냉면 집 맛도 밍밍한 것이 특징이다. 처음 이들 식당에서 냉면을 먹은 사람들은 의외로 싱거운 데 놀라지만 몇 번 먹어 보면 그 깊고 은은한 맛에 빠져들고 만다.
흥남 철수와 함께 함경도민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대한민국 곳곳에 함흥 냉면 집이 생겨나게 됐는데 속초에서 명태회를 올린 회국수를 판 집이 최초의 함흥 냉면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1953년 오장동에 문을 연 가게가 함흥 냉면의 원조 격으로 지금도 성업중이다.
평양 냉면과 함께 냉면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함흥 냉면은 농마 국수라고도 불리는데 고구마나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함흥에도 원래는 물냉면이 있었는데 평양 냉면과의 경쟁에서 밀려 사라지고 지금은 비빔 냉면이 곧 함흥 냉면이 돼 버렸다.
남북 정상이 지난 27일 판문점에서 평양 냉면으로 식사를 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대한민국에 냉면 열풍이 불고 있다. 평양 냉면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서울 냉면 집들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주말 평양 냉면 가맹점 1,500여 곳 매출이 전주에 비해 80% 늘어났다고 한다. 특히 평소 냉면을 잘 먹지 않는 20대의 경우 전년에 비해 99%나 늘어나 다른 계층을 압도했다.
냉면, 그 중에서도 평양 냉면은 단순하지만 만들기가 상당히 어려운 음식이다. 다른 것은 한국 못지 않게 잘 만드는 미주 한인 식당 중에서도 평양 냉면을 제대로 만드는 곳은 많지 않다. 남북 관계가 순조롭게 풀려 한국과 미국에서도 옥류관 평양 냉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