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작된 댓글

2018-04-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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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한국에서는 ‘4대 일간지’라는 것이 있었다. 1,000만 서울 시민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국, 조선, 동아, 중앙 등 네 일간지에서 정보를 얻었고 지방지들도 주요 기사는 이들에 의존했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들의 독과점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신문 설립이 자유로워지면서부터다. 신문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철옹성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4대 일간지’라는 말 자체가 점차 사라졌다. 이와 반비례해 급속도로 영향력을 넓혀간 업체가 있다. 고객과 정보를 맺어주는 소위 인터넷 포털 사이트라는 것이다.

1997년 네이버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것이 장차 한국 뉴스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항해하다’라는 뜻의 ‘navigate’와 ‘하는 사람’이란 뜻의 ‘er’의 합성어인 네이버는 현재 한국에서 뉴스 검색 점유율이 70~80%에 육박하고 있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 사이트는 인터넷 광고가 주 수입원인데 광고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회했느냐와 비례한다. 따라서 이들은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댓글이다.

댓글은 특정 이슈에 대해 일반인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익명성을 이용해 자기 의견이 아니라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과 욕설 등 사이버 공간을 혼탁하게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인터넷 댓글의 상당수가 개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조작된 것임이 드러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기사를 읽고 그냥 넘어가며 댓글을 다는 이는 소수다. 작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1,700만 명의 네이버 이용자 중 1인당 댓글 수는 평균 2.6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예 댓글로 날을 지새는 사람들도 있다. 댓글 상위 작성자 100명이 이 기간 올린 댓글 수는 23만 건에 달한다. 1인당 2,300건 꼴이다.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사람은 하루 1,300만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댓글을 다는 사람은 12만 명으로 0.9%며 하루 10개 이상 다는 사람은 3,700명으로 0.03%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3개까지 아이디를 만들 수 있으니 1,000명만 있으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충남대 조사에 따르면 기사에 어떤 댓글이 달리느냐에 따라 읽는 사람의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좋은 댓글이 많이 달린 기사는 독자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는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여론의 향방이 생명줄인 정치인이나 정당으로서는 이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네이버 등 포탈에서는 여론 조작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으나 매크로 등 조작 기법의 발달로 자체 방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진단이다.

누군가의 여론 조작으로 선거 결과가 달라진다면 이는 분명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새누리당 시절 국정원을 통한 여론 조작 사실이 밝혀져 30여명이 수사를 받고 감옥에 갔지만 최근 터진 드루킹 사태를 보면 집권 민주당도 인터넷 여론 조작에서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인터넷 여론 조작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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